김홍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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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륙(金鴻陸, ? ~ 1898년)은 조선 말기의 역관이다.

함경도에서 태어났다. 천민출신이었으나 블라디보스토크를 내왕하며 러시아어를 익혀 역관으로 특채되었다. 1894년부터 이듬해 사이에 이범진이 러시아공사 베베르와 조약을 체결할 때 조선 유일의 러시아어 통역관으로서 활약하였다. 1895년에는 임최수·안경수 등과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을 일으켰다. 1896년 아관파천 때에는 비서원승으로 있으면서 고종과 러시아공사 베베르 사이에 통역을 맡아보았다.

그 뒤 고종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면서 권세를 함부로 행사하고, 뇌물을 탈취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였다. 윤용선 내각에서 학부협판으로 승진되고, 1898년 친러파의 몰락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고종의 총애와 러시아의 세력을 배경으로 온갖 전횡을 자행하는 한편, 궁궐을 무상출입하고 독립협회를 헐뜯었다. 동년 8월, 러시아와의 통상에서 거액을 착복한 사실이 드러나서 전라남도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떠나기 직전에 원한을 품고 고종이 즐겨 마시는 커피에 독약(아편)을 넣어 살해하려고 한 독살사건이 발각되자, 반역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무고설[편집]

함태영에 의하면 그가 고종, 순종의 커피에 독을 탔다는 증거가 없다는 설을 제기하였다. 1898년(광무 1년) 7월 26일 김홍륙이 황태자의 커피에 독을 타서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 되었다. 고종은 냄새가 이상하여 마시지 않았는데, 황태자는 마시다가 토하고 기절했다. 김홍륙에 대한 재판을 평리원 판사 함태영이 맡게 되었다. 7월 25일 고종 탄신 다음 날 에 발생한 것으로 김홍륙은 시베리아 에서 서양 요리사 김종호를 궁중 요리사 로 추천하여 고종 과 황태자의 수라상을 차리고 있었다. 수라상은 내 소주방에서 접시와 음식을 먼저 검사하고 맛보고 올리는데, 그 커피를 맛본 사람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함태영은 일단 김홍륙에게 증거 불충분 이란 이유로 무죄 또는 가벼운 처벌로 끝내려 하였다.[1] 민씨 가문에서는 함태영에게 김홍륙을 극형 에 처하라고 계속 압력을 보냈다. 그러나 함태영은 민씨 정권의 요구를 거절했다.

훗날 김홍륙의 먼 일가 후손 인 김재준(金在俊) 목사는 만년의 함태영 에게이 사건의 진상을 물어보았다. 함태영은 이 사건 은 민씨네가 조작한 음모 였다고 술회하였다. 그러나 고종으로부터 어떠한 밀지가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끝내 함구하였다.[1] 재판은 다른 판사에게 넘겨지고 김홍륙 등은 사형당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최종고, 《한국의 법률가》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7) 60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