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대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월산대군(月山大君)
대군(大君)
별칭
별호 초기 작위명은 월산군(月山君)
신상정보
출생일 단종 2년(1454)
출생지 조선 조선 한성부 수양대군 사저
사망일 성종 19년(1488) 12월 21일
사망지 조선 조선 한성부 월산대군 사저
능묘 월산대군묘
왕조 조선 조선 한성부
부친 덕종
모친 소혜왕후
배우자 승평부대부인
자녀 승헌대부 덕풍군(承憲大夫 德豊君)
종교 유교(성리학) → 불교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년 ~ 1488년 12월 21일)은 조선 전기의 왕족, 시인이다. (李), 이름은 정(婷), 본관전주(全州), 자(字)는 자미(子美)이고 호(號)는 풍월정(風月亭)이며 시호(諡號)는 효문(孝文)이다.

생애[편집]

덕종의 맏아들로 성종의 친형이며, 세조의 첫손주이자 장손이다. 어릴 때에는 할아버지인 세조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며 문장에도 뛰어나 중국에까지 그의 시가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북촌에다 별장을 지어놓고 그 곳에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자연 속에 묻혀 일생을 보냈다. 예종의 사후 장손인 자신 대신 동생인 자을산군이 왕위(王位)를 계승했으나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불평불만을 나타낼 것을 내다본 정희왕후의 지시로 그는 반발 무마용으로 특별히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된다.

사후 그의 묘는 수난을 당하였다. 연산군은 그의 부인 승평부대부인 박씨와 함께 자다가 꿈에 그를 보고는 밉게 여겨 내관으로 하여금 긴 쇠기둥을 만들어 그의 묘 광중(壙中)에 꽂게 하였는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1]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에 사당이 있으며, 전주 이씨 계성군파에서 사당을 관리하고 있다.

저서[편집]

  • 《풍월정집》

가족관계[편집]

왕가 전주 이씨(全州 李氏)

월산대군 (月山大君,1454~1488) 정실부인1명, 측실1명, : 자녀1명

  • 정실 : 승평부대부인 순천 박씨(昇平府大夫人 順天 朴氏 1455~1506)
  • 측실 : 부부인 원주 김씨(府夫人 原州 金氏, 생몰년 미상)(2남 중에 1남은 조졸한 듯하다.[출처 필요])
    • 서자 : 덕풍군 이이(德豊君 李恞, 1485~1506)
    • 며느리 : 파평현부인 파평 윤씨(坡平縣夫人 坡平 尹氏, 생몰년 미상)[2]
      • 손자 : 파림군 이주(坡林君 李珘, 1500~1541)
      • 손자 : 계림군 이유(桂林君 李瑠, 미상~1545)[3]
      • 손자 : 전성부정 이리(全城副正 李璃, 생몰년 미상)

관련 문화재[편집]

관련 작품[편집]

TV 드라마[편집]

기타[편집]

그의 장남인 덕풍군은 22살의 나이로 요절했고, 덕풍군의 장자인 파림군마저 젊어서 요절하였다. 셋째 아들인 전성도정은 을사사화 때에 죽게 된다. 덕풍군의 차남인 계림군은 후손이 없어 성종의 서자인 계성군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을사사화 때 역모로 물려 죽는다. 월산대군파의 후손은 파림군의 아들 양천도정과 양원도정을 통해 이어지게 된다.

각주[편집]

  1. :::::조선왕조실록의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 윤여필(尹汝弼)의 딸이자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언니. 덕풍군 내외는 이종사촌간이다.
  3. 계성군(桂城君)의 양자로 입적.
Heckert GNU white.svgCc.logo.circle.svg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