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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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령군 이정 또는 이지(惠寧君 李𥘺 또는 李祉[1], 1407년 ~ 1440년)은 조선의 왕족으로 태종의 다섯째 서자이다. 자는 선여(善餘), 호는 동계(桐溪)이다.

생애[편집]

선빈 안씨 소생으로 세종의 이복동생이다. 1427년 홍녕군(弘寧君)에 봉해졌으며[2], 2년 후 혜령군(惠寧君)으로 개봉되었다[3]. 온녕군과 종학에서 싸움을 벌이고 광패한 행동을 일삼아 세종이 그의 출입을 엄금하고 정2품 직첩과 녹봉을 거두어 벌하였으며,[4] 그 후에도 성절 하례(聖節賀禮)에 불참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세종 15). 1438년(세종 20)에는 계품사(計稟使)가 되어 북경에 가 명나라 황제의 칙서를 받아 돌아오는 공을 세웠다. 이후 3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세종은 조회를 3일 동안을 정지하고, 관곽과 쌀 콩 합하여 1백 석과 베 40필, 저포(苧布) 3필과 종이 2백 권을 주고,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 정척(鄭陟)에게 호상(護喪)을 명하여 예로써 장사지내게 하였다. 또한 혜령군에게 양회(襄懷)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세종이 친히 혜령군의 집에 가려 하였으나 더위 등을 이유로 신하들이 반대하여 중지되었다.[5]

묘소[편집]

혜령군의 묘소는 처음엔 수원시 동문 안쪽에 위치 했었는데, 3년 뒤 억울하게 죽은 장인 심온의 묘를 왕자의 묘와 함께 나라에서 관리하길 원했던 세종의 명으로, 영통구 이의동 산234번지 경좌로 옮겼었다. 지금의 묘소는 2008년 광교역사공원 조성을 위해 안효공 심온 묘소의 서쪽 능선 옆으로 묘를 이전한 것이며, 혜령군의 묘역은 부인 무송 윤씨와 쌍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들 예천군과 손자 축산군의 묘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현재 혜령군 묘소는 경기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440-1에 위치해 있다.

가족관계[편집]

  • 부 : 태종
  • 모 : 선빈 안씨 혹은 후궁 안씨[6]
  • 부인 : 낙안군부인 무송 윤씨(樂安郡夫人 茂松尹氏) (1405~1442) - 사직(司直) 증찬성(贈贊成) 윤변의 딸
    • 장남 : 예천군 소효공 이수 (醴泉君 昭孝公 李洙) (1422~1455)
    • 며느리 : 현부인(縣夫人) 원주 원씨(原州元氏)
      • 손자 : 축산군(竺山君) 이효식(李孝植)
      • 손자 : 서성부정(瑞城副正) 이덕식(李德植)
      • 손자 : 석산부수(石山副守) 이선식(李善植)
    • 장녀 : 원맹수(元孟穟)와 혼인
    • 차녀 : 안동인 복창군 문도공 김수녕(福昌君 文悼公 金壽寧, 1436~1473)와 혼인
    • 삼녀 : 원보강(元甫崗)와 혼인

각주[편집]

  1. 《조선왕조실록》 등 당대의 기록[1]에서는 모두 혜령군의 이름을 이정(李𥘺)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전주이씨대동종약원 홈페이지[2] 등에서는 혜령군의 이름을 이지(李祉)라고 하고 있다.
  2.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38권, 세종 9년 10월 27일 신사 5번째기사
  3.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44권, 세종 11년 6월 11일 병술 2번째기사
  4. 《조선왕조실록》 세종 48권, 1430년(세종 12)
  5. 《조선왕조실록》 세종 89권, 1440년(세종 22)
  6. 예문관 대제학 변계량이 쓴 태종의 신도비문 상의 "궁인 안씨(宮人 安氏) 소생 1남 3녀" 중 1남은 혜령군일 가능성이 높다. 익녕군(益寧君)은 태종의 유복자로서 1422년 10월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 궁인(宮人) 안씨(安氏)가 1남 3녀를 낳았는데, 모두 아직 어리다. 《조선왕조실록》태종 36권, 18년(1418 무술년) 11월 8일(갑인)
    뿐만 아니라, 선원계보상 혜령군의 어머니는 안씨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선빈 안씨 소생의 옹주들(소숙옹주, 경신옹주)의 어머니도 안씨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혜령군의 어머니가 선빈 안씨일 수도 있다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