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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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군(寧城君)
군(君)
별칭
이계(李㻑)
시호 효경(孝景)
신상정보
출생일 1606년 음력 12월 24일
출생지 조선의 기 조선
사망일 1649년
사망지 조선의 기 조선
매장지 영성군 이계 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왕조 조선의 기 조선
부친 선조
모친 온빈 한씨
배우자 회산군부인 황씨
자녀 회원군

영성군(寧城君, 1606년 음력 12월 24일 ~ 1649년)은 조선의 왕족이다. 선조의 13번째 아들이자 온빈 한씨의 셋째 아들이다.

생애[편집]

1606년(선조 39년) 음력 12월 24일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온빈 한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1] , 이름은 계(㻑), 본관전주이다. 흥안군, 경평군, 정화옹주의 친동생이며. 광해군, 정원군과는 이복 형제이다.

1632년(인조 10년) 음력 6월 15일 영성군의 종이 무단으로 감옥에 들어가 갇혀있던 죄수들을 시켜 관원들을 욕보이게 하여 물의를 빚었다. 당시 대간들은 영성군의 종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였으나, 인조는 별다른 처벌 없이 지나갔다.[2] 또 이듬해 열린 인목왕후 연제[3]에는 경평군과 함께 병을 핑계로 불참하여 또 탄핵을 받았으나, 이때에도 인조의 배려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4]

이후 1649년(인조 27년) 향년 4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으며,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 있다.[5] 사후 효경(孝景)의 시호를 받았다.[1]

가족 관계[편집]

영성군은 창원 황씨 황이중(黃履中)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 회원군을 낳았으며,[6] 황씨는 회산군부인(檜山郡夫人)에 봉해졌다.

회원군은 효종 때부터 영조 때까지 살며 사옹원, 종친부, 도총부 등에서 관직을 두루 지냈다.[1] 1724년(영조 즉위년) 회원군의 나이가 90에 가까워 영조로부터 그 손자들이 가자되었고,[7] 1731년(영조 7년) 음력 8월 6일 향년 96세로 사망하여 조정에서 으로 쓸 재료와 3년분의 녹미를 지급하였다.[8][6]

회원군은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요절하는 바람에 세종의 7남 광평대군의 7대손을 양자로 들여 함평군(咸平君)에 봉하여 후사를 이었다. 함평군은 아들을 6명이나 두었으나, 현재의 영성군파는 총 200세대 미만으로 그 수가 적은 편이라고 한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이재항 등이 영성군의 후손이다.[1]

  • 아버지 : 제14대 선조(宣祖, 1552~1608, 재위:1567~1608)
  • 어머니 : 온빈 한씨(溫嬪 韓氏, 1581~1604)
    • 형 : 흥안군 이제(興安君 李瑅, ?~1624)
    • 형 : 경평군 이륵(慶平君 李玏, 1600~1673)
    • 누나 : 정화옹주(貞和翁主, 1604~1667)
    • 부인 : 회산군부인 창원 황씨(檜山郡夫人 昌原 黃氏)
      • 아들 : 회원군 이윤(檜原君 李倫, 1636~1731)

출처[편집]

  1. 전주이씨대동종약원 - 영성군 약사
  2. 《조선왕조실록》인조 26권, 10년(1632 임신 / 명 숭정 5년) 6월 15일(신사) 1번째기사
  3. 練祭. 사후 1년이 되는 날 지내는 제사인 소상이 끝나는 때의 의식이다. 《한국고전용어사전》〈변제〉 항목 참고
  4. 《조선왕조실록》인조 28권, 11년(1633 계유 / 명 숭정 6년) 7월 6일(병신) 2번째기사
  5. 영성군이계묘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6.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이륜〉항목
  7. 《조선왕조실록》영조 2권, 즉위년(1724 갑진 / 청 옹정 2년) 11월 21일(신유) 2번째기사
  8. 《조선왕조실록》영조 30권, 7년(1731 신해 / 청 옹정 9년) 8월 6일(병신) 2번째기사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