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성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밀성군 이침(密城君 李琛, 1430년 ~ 1479년)은 조선 세종의 5남으로 생모는 신빈 김씨이다. 자는 문지(文之), 시호는 장효(章孝)이며, 본관전주이다.[1]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여, 이건명, 이이명, 독립운동가 이창호(李昌鎬), 이건호(李建鎬), 이중각(李重珏) 등이 있다.

생애[편집]

1442년 밀성군에 봉해졌으며[2] 1444년 민승서(閔承序)의 딸과 혼인하였다.[3] 슬하에 운산군(雲山君), 춘성군(春城君), 수안군(遂安君), 석양군(石陽君) 등 4남을 두었다. 1452년 밀성군이 병이 들자 이복형인 문종안평대군에게 명하여 승려들을 모아 흥천사에서 기도하게 하자 밀성군의 병이 나았다.[4] 문종은 크게 기뻐하며 밀성군의 처형 두 사람에게 관작을 내리게 하였으며,[4] 내의 전순의(全循義)에게도 안장을 얹은 말을 하사하였다.[5] 1467년(세조 13)에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지냈다.[6] 1468년(조선 예종 즉위년) 11월에 예종으로부터 숙부의 예우를 받게 되었다. 장남 운산군은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을 옹립한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평가[편집]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 문종, 세조 등의 총애를 받았으며 익대공신 2등, 좌리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사신은 밀성군의 인품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이침(李琛)은 현명하고 분명하여 일을 처리하는 재간이 있어, 세조(世祖)가 재능과 덕량이 있다고 여겼다. 모든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명하여 종실(宗室) 속에 임하게 하여 가장 위임(委任)을 받았으며, 치산(治産)하는 데 부지런하여 가산(家産)이 아주 부유하였다.” 하였다.[1]

가족관계[편집]

  • 부 : 제 4대 세종
  • 모 : 신빈 김씨
  • 부인 : 풍덕군부인 여흥 민씨(豊德郡夫人 驪興閔氏) - 판윤(判尹) 증찬성(贈贊成) 민승서(閔承序)의 딸
    • 장남 : 운산군 계(雲山君 誡)
    • 차남 : 춘성군 도효공 당(春城君 悼孝公 譡) → 태조 8번째 왕자 의안대군의 봉사손(奉祀孫)으로 출계
    • 3남 : 수안군 상(遂安君 言+賞) → 이복 동생인 수춘군에게 출계
    • 4남 : 석양군 격(石陽君 䛿)

각주[편집]

  1. 《조선왕조실록》성종 100권, 10년(1479 기해 / 명 성화(成化) 15년) 1월 1일(무오) 1번째기사
  2. 《조선왕조실록》 세종 97권, 24년(1442 임술 / 명 정통(正統) 7년) 7월 3일(신유) 1번째기사
  3. 《조선왕조실록》 세종 105권, 26년(1444 갑자 / 명 정통(正統) 9년) 8월 24일(경오) 5번째기사
  4. 《조선왕조실록》 문종 12권, 2년(1452 임신 / 명 경태(景泰) 3년) 3월 12일(을사) 2번째 기사
  5. 《조선왕조실록》 문종 13권, 2년(1452 임신 / 명 경태(景泰) 3년) 4월 13일(정축) 4번째기사
  6. 《조선왕조실록》 세조 41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1월 2일(기사) 1번째기사

참고문헌[편집]

  • 이상은 정복규의 성씨칼럼 < 성씨 전문기자 > 의 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