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평군 (이의생)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금평군 이의생(錦平君 李義生, ? ~ 1435년)은 조선의 왕족으로 정종의 일곱째 서자이다.

생애[편집]

숙의 기씨 소생으로 사직(司直) 홍숙(洪宿)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와 혼인하였으나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1422년(세종 4) 원윤(元尹)으로 봉해졌으나 1425년 의평군과 함께 사패를 위조하여 전라도 금구(金溝)에 유배되었다가 같은 해 6월 23일에 풀려났다. 1427년(세종 9) 음행을 저질러 강화(江華)로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유배에서 풀려났다. 1435년(세종 17) 11월 3일에 세상을 뜬다. 세종은 이에 이틀간 조회를 중지하고 관곽(棺槨)과 부물(賻物)을 하사했다. 시호는 효희(孝僖)이다. 사후에 금평군으로 봉해졌고 수도군 덕생의 11대손 달휘가 봉사손이 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정부인 : 군부인 남양 홍씨(郡夫人 南陽 洪氏) - 사직(司直) 홍숙(洪宿)의 딸
    • 양자 : 동림부정(東林副正) 엄(儼) - 정종의 7남 수도군의 두번째 아들
      • 양손자 : 청연수(淸淵守) 숙의(淑義) - 동림부정의 동생인 풍산부정(豊山副正) 외(偎)의 둘째 아들
      • 봉사손(奉祀孫) : 이달휘(李達徽) - 수도군(守道君)의 11대손
  • 첩부인 : 매소월
    • 장녀 : 전주 최씨(全州崔氏) 현손(崔顯孫)에게 출가(出嫁)

참고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