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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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령군 이간(厚寧君 李衦(이우), 1419년 ~ 1450년 10월 6일)은 조선 태종의 일곱째 서자이며 어머니는 후궁 이씨(李氏)다.

가족관계[편집]

  • 모: 숙의 이씨(淑儀 李氏)[1]
    • 정부인: 무안군부인 평산 신씨(武安郡夫人 平山申氏) - 영 증좌찬성 신경종의 딸
    • 계부인: 동양군부인 한양 조씨(東陽郡夫人 漢陽趙氏)
      • 서장남 정해도정 집(貞海都正 緝)
      • 며느리 신부인 민씨
        • 손자 미원부정 범
        • 손자 학림령 범영
        • 손자 서강령 범찬
        • 손자 서흥령 범준
        • 손자 다경령 돈
      • 서차남 암성수 윤(巖城守 綸)
      • 며느리 신부인 이씨
        • 손자 백령부수 배
        • 손자 지산부령 돈
        • 손녀 김헌문에게 출가
      • 서녀: 배맹종(裵孟宗)과 혼인

생애[편집]

  • 이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以衧爲厚寧君 = 이우를 후령군으로[2] 봉 함
  • 후령군(厚寧君) 이우(李衧)의 모친 이씨가 죽으니, 임금이 말하기를,“후령군의 모가 태종에게 쫓겨난 사람인데, 대군들이 복(服)을 입어야 하는가.[3]
  • 후령군(厚寧君) 이간(李衦)이 졸하였다.[4] 이간은 태종(太宗)의 서자(庶子)로서 나이 12세에 군(君)에 봉(封)해지고 계자(階資)가 가정 대부(嘉靖大夫)이었는데, 이듬해에 예(例)대로 정1품에 올랐다. 이 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32세였다. 임금이 육선(肉膳)을 거두고 조회(朝會)와 저자[市]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치조(致弔)하고 치전(致奠)하여 예(禮)대로 장례하였다. 시호(諡號)를 ‘희도(僖悼)’라고 내려 주니, 소심(小心)하여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을 희(僖)라 하고, 중년(中年)이 되어 일찍 죽은 것을 도(悼)라 한다. 아들이 없었다.

각주[편집]

  1. 후령군 묘비에 '태종대왕과 숙의 이씨(淑儀李氏)의 일곱째 왕자'라고 기록됨
  2. 《조선왕조실록》세종 45권, 11년(1429 기유년) 9월 30일(계유)
  3. 《조선왕조실록》세종 61권, 15년(1433 계축년) 윤8월 6일(병진)
  4. 《조선왕조실록》문종 4권, 즉위년(1450 경오) 10월 6일(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