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여 (15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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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여(李敬輿, 1585년 ~ 1657년)는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세종의 7대손이다.

생애[편집]

1601년, 사마시를 거쳐 1609년,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11년, 검열이 되었지만 광해군의 폭정을 보고 낙향하였다. 1623년, 수찬으로 다시 조정에 나아가고 1624년, 이괄의 난때 왕을 공주에 호종하고 이어 이원익의 종사관이 되었으며 이어 부제학, 청주목사, 좌승지,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병자호란 이후 1637년, 경상도관찰사, 이조참판, 대사성등을 겸임하고 다시 형조판서가 되었고 이어 병조판서, 대사헌, 도승지를 거쳐 우의정이 되고 영중추부사,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그는 배청친명파로써 두번이나 청나라에 억류된 적이 있다.

묘소[편집]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으며, 1986년 4월 9일 포천시의 향토유적 제8호 《이경여 선생 묘 및 신도비》로 지정되었다.

가족관계[편집]

  • 7대조 : 조선 4대 국왕 조선 세종 이도(李祹)
    • 6대조 : 밀성군 이침(李琛)
      • 5대조 : 운산군(雲山君) 이계(李誡)
        • 고조부 : 광성정(匡城正) 이전(李銓)
          • 증조부 : 광원수 증 광원군 이구수(李耉壽)
            • 조부 : 첨정 이극강(李克綱)
              • 생부 : 목사 이유록(李綏祿)
              • 생모 : 송씨 - 송제신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