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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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沈溫, 1375년 ~ 1419년 1월 18일 (1418년 음력 12월 23일))은 고려 시대 말기와 조선 시대 초기의 문신이자, 세종의 국구이다. 자는 중옥(仲玉), 시호는 안효(安孝)이고, 봉군호(封君號)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본관은 청송(靑松), 청송 심씨(靑松 沈氏) 안효공파(安孝公派)의 파조(派祖)이다.

조선 왕실의 이중 인척으로 세종대왕의 장인이자, 세종대왕의 외삼촌 민무휼의 사돈이다.[1] 또한 명종때의 형제 정승인 심연원, 심통원명종인순왕후의 친정아버지 심강의 직계 조상이기도 하다. 성종연산군때의 정승 노사신은 그의 외손자였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산13-10 소재
심온(沈溫)선생 묘

가계[편집]

  • 세종대왕의 국구(장인)이고, 소헌왕후의 아버지이며, 정소공주, 문종, 세조의 외조부이다. 또한 세종대왕의 후궁 영빈 강씨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 고려문하시중을 지내고, 조선문하부 좌정승을 지낸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의 5남이다.
  • 조선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 심회(沈澮), 조선 세조 때, 영중추부사를 지낸 심결(沈決)의 아버지이다.
  • 조선 태종세종 때, 의흥삼군부 도총제를 지낸 심인봉(沈仁鳳)의 동생이고, 태조 이성계의 부마 청원군(靑原君) 심종(沈淙), 조선 태종세종 때, 의흥삼군부 동지총제를 지낸 심정(沈泟)의 형이다.
  • 조선 세종 때, 좌의정영돈녕부사를 지낸 안천보(安天保)의 사위이고, 태종의 국구 민제의 3남인 지돈녕부사 여원군(驪原君) 민무휼과 사돈지간이다. 심온의 아들 심준과 심회가 각각 민무휼의 딸들과 결혼했다. 민무휼은 심온의 사위인 세종대왕의 셋째 외삼촌이다. 또한, 심온은 태종의 국구 민제의 사위 우의정 노한(盧閈)과도 사돈지간이다. 노한(盧閈)의 아들 노물재가 심온의 사위이다. 심온은 민제의 아들 민무휼과도 사돈지간이고, 민제의 사위 태종과 노한(盧閈)과도 사돈지간이니, 민제와 심온은 기묘한 삼중 사돈관계라고 할 수 있다.
  • 사위 강석덕[2]의 아들 강희안, 강희맹 형제, 연산군 때, 영의정에 오른 노사신의 외조부이다. 또한 영빈 강씨 역시 그의 외손녀였는데, 영빈 강씨는 자신의 이모부가 되는 세종대왕의 첫 번째 후궁이기도 했다.
    • 영빈 강씨가 강석덕의 딸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문종이 1414년생임에 기인한다. 즉 영빈 강씨가 세종의 후궁이 되기 위해서는 1414년에서 1417년 사이에 태어나야 하는 계산이 되는데, 이럴 경우 영빈 강씨의 소생인 화의군이 1425년생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즉 이 계산대로라면 영빈 강씨는 9세 내지 12세 때에 아들 화의군을 놓았다는 것이 되는데, 그 나이의 후궁도 매우 드물거니와 그 나이의 출산은 더더욱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 위 주장에 대해 영빈 강씨가 애당초 강석덕과 혈연 관계가 없는 남이라는 지적도 있다. 강석덕의 묘표[3]에는 강석덕에게 3남 5녀가 있다는 내용만이 있을 뿐, 영빈 강씨에 내한 언급은 없어, 영빈 강씨가 강석덕의 딸이 아니고 따라서 심온의 외손녀도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 외손자가 박중선인데, 박중선의 딸들이 각기 월산대군부인, 제안대군의 부인, 중종장경왕후생모가 되었다.

생애[편집]

고려 말에 과거 급제를 하고, 조선의 개국 이후부터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조선 태조 1년(1392년)에는 병조와 공조의 의랑, 조선 태종 11년(1411년)에는 풍해도 관찰사, 조선 태종 12년(1412년)에는 참지의정부사를 거쳐,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는 대사헌으로서, 태종에게 육조직계제를 건의하였다. 이후, 노비변정도감 제조, 의금부 제조 등을 거쳐, 조선 태종 14년(1414년)에는 형조판서, 호조판서,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京兆尹), 의정부 참찬, 의흥삼군부 좌군도총제, 이조판서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후, 공조판서(工判), 이조판서(吏判), 의정부 참찬, 의정부 찬성 등을 지냈다.

조선 세종 원년(1418년)에는 태종의 양위로 인하여, 사위가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했으므로, 1418년 음력 9월 3일 국구(왕의 장인)가 된 심온은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으로 봉작과 동시에 영의정에 올랐다.[4] 그 해 음력 9월에 세종의 즉위를 알리기 위해 으로 가는 사은사(謝恩使)의 수장(사은주문사)에 임명된다. 그 때, 태종에 대한 불경죄를 이유로 심온의 아우 심정 등이 체포되었다. 이후 사태가 일단락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심온이 명나라에 가 있는 동안, 당시 좌의정 박은 등의 무고로 인해, 심정이 처형당하고, 명나라에서 돌아온 심온도 의주부(義州府)에서 체포되어, 한양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은 뒤 음력 12월 25일 수원(水原)에서 사사되었다. 현재 심온의 묘소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산 13-10번지에 위치해 있고, 그의 신위는 불천위[不遷位]로 모셔져 지금까지 제사를 이어오고 있다.

가족 관계[편집]

심온의 아들 심준, 심회가 민무휼의 딸과 결혼하여 겹사돈인데, 겹사돈인 민무휼은 다시 심온의 사위 세종대왕의 외삼촌으로, 심온과 민무휼은 이중 사돈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민무휼의 아버지 민제의 사위 태종과 노한(盧閈, 노물재의 아버지)이 모두 심온의 사돈이므로, 민제와 심온은 삼중 사돈관계를 형성한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산13-10 소재 심온(沈溫)선생 묘비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세종대왕의 처남 심준, 심회가 각각 세종대왕의 외삼촌 민무휼의 두 딸과 결혼하여 이중 인척관계가 되었다.
  2. 1395년생
  3.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자헌대부(資憲大夫)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로 증시(贈諡)가 대민(戴?)인 강공(姜公)의 묘(墓) (전략) 3남 5녀를 두었는데, 아들로 첫째 희안(希顔)은 지금 이조참판(吏曹參議)이고, 둘째 희맹(希孟)은 지금 예조참의(禮曹參 議)이며, 막내 희증(希曾)은 먼저 죽었다. 딸로 첫째는 호군(護軍) 남준(南俊)에게 출가하였고, 둘째는 군사(郡事) 신숙(辛肅)에 게 출가하였으며, 셋째는 고사(庫使) 김원신(金元臣)에게 출가하였고, 넷째는 감정(監正) 황신(黃?)에게 출가하였으며, 다섯째 는 정언(正言) 박미(朴楣)에게 출가하였다. 손자와 손녀는 모두 34인이다. 천순(天順) 5년(1461, 세조 7) 2월 17일에 비석을 세우다.
  4. 《세종실록》 즉위년(1418) 9월 3일 2번째 기사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