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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 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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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 송씨
礪山 宋氏
나라대한민국
관향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시조송유익(宋惟翊)
중시조송송례(宋松禮)
주요 인물송염, 송분, 송훈석, 송하진, 송기섭, 송재호, 송기석, 송재익
인구(2015년)298,231명

여산 송씨(礪山 宋氏)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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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進士)로 나라에 훈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銀靑光錄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그의 선계(先系)는 중국 경조(京兆)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이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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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의 아들 송숙문(宋淑文)이 고려 원종(元宗)때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했다고 한다. 증손 송송례(宋松禮)는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 원나라 도원수 홀돈(忽敦), 부원수 홍차구와 함께 충렬왕 때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상중대광(三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에 올라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개성원윤을 지낸 송운을 파조(派租)로 하는 원윤공파(元尹公派), 밀직부사를 지낸 송방영(宋邦英)을 파조로 하는 밀직공파(密直公派), 소윤을 지낸 송원미(宋元美)를 파조로 하는 소윤공파(少尹公派), 지신사를 지낸 송인(宋璘)을 파조로 하는 지신공파(知申公派), 정가공 송서(宋瑞)를 파조로 하는 정가공파(正嘉公派)로 갈라져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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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礪山)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益山市)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여량(礪良)과 낭산(朗山)이 합쳐진 지명이다. 여량현(礪良縣: 일명 礪良)은 백제 때에는 지량초현(只良肖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개칭하였다. 낭산현(朗山縣)은 백제의 알지산현(閼地山縣)인데 신라 경덕왕 때 야산현(野山縣)으로 바꾸었다. 940년(고려 태종 23)에 야산현을 낭산현으로 바꾸었고, 1018년(현종 9)에는 전주의 속현이 되었다. 1396년(태조 5)에 여량현이 낭산현을 병합하였고, 1399년(정종 2)에는 여산현이라 개칭하였다. 1436년(세종 18)에 여산군으로 승격되었고, 1699(숙종 25)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여양(礪陽)과 호산(壺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1896년 전라북도 여산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여산군이 폐지되고 관할 11개면이 여산면 등 5개면으로 통합되어 익산시에 편입되었다.

분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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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
宋惟翊
송숙문
宋淑文
송희식
宋希植
송송례
宋松福
송염
宋琰
송분
宋玢
송운
宋惲
송방영
宋邦英
송자상
宋子祥
송자연
宋子淵
송원미
宋元美
송진
宋瑨
송린
宋璘
송유
宋瑈
송서
宋瑞
원윤공파
元尹公派
밀직공파
密直公派
소윤공파
少尹公派
지신공파
知申公派
정가공파
正嘉公派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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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윤공파(元尹公派)  : 송운(宋惲)

밀직공파(密直公派) : 송방영(宋邦英)

소윤공파(少尹公派) : 송원미(宋元美)

지신공파(知申公派) : 송린(宋璘)

정가공파(正嘉公派) : 송서(宋瑞)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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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윤공파(元尹公派) 소윤공파(少尹公派)
!25세26세27세28세29세30세31세32세33세34세35세36세37세38세39세40세41세
○호(浩)주(柱)○○섭(燮)기(基)○○석(錫)하(河)○○근(根)병(炳)○○곤(坤)호(鎬)○○순(淳)정(楨)○○환(煥)규(圭)○○현(鉉)기(沂)○○표(杓)
  • 밀직공파(密直公派)
!25세26세27세28세29세30세31세32세33세34세35세36세
종(鍾)○, 종(鍾)○원(元)○, 호(浩)○○형(亨), 영(榮)○이(利)○, ○섭(燮)○정(貞), 재(在)○인(仁)○, ○현(鉉)○의(義), 낙(洛)○예(禮)○, ○화(和)○지(智), 환(煥)○효(孝)○, ○희(喜)○제(悌), 석(錫)○○충(忠), 수(洙)○}
  • 지신공파(知申公派)
!25세26세27세28세29세30세31세32세33세34세35세36세37세38세39세40세41세
종(鐘)○○호(浩)영(榮)○○섭(燮)기(基)○○현(鉉)락(洛)○, 제(濟)○○화(和)형(炯)○○균(均)석(錫)○○수(洙)병(秉)○○희(熙), 윤(允)○규(奎)○○진(鎭)한(漢)○○상(相)
  • 정가공파(正嘉公派)
!24세25세26세27세28세29세30세31세32세33세34세35세36세37세38세39세
○만(萬), 주(柱)○○면(勉), ○영(榮)○회(會), 요(堯)○○현(顯), ○석(錫)○의(儀), 태(泰)○○범(範), ○근(根)○용(庸), 용(容)○○재(宰), ○규(圭)○성(聖), 현(鉉)○○규(揆), ○영(永)○학(學), 동(東)○○병(柄), ○렬(烈)○연(蓮), 철(喆)○경(卿)○, ○호(鎬)○진(振), ○해(海)기(起)○, ○식(植)○조(祚), 병(炳)○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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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간(宋侃)

세종과 단종 대에 걸쳐 형조 참판을 지냈고 왕명으로 호남을 순무(巡撫)하고 돌아와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영월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낙향하여 고향인 여산에서 은거 하였다. 단종이 시해되자 산속으로 들어가 애곡하여 복상한 충신인 팔절(八節)로 일컬어졌으며 동학사(東鶴寺)의 초혼각(招魂閣)과 운곡서원(雲谷書院) 숙모전(肅慕殿) 세충사(世忠사) 등에 제향되었다.

  • 송건(宋建)

현령 송하형의 아들인데 임진왜란 때 조방장(助防將) 양사준(梁士俊)의 선봉으로 나가 공을 세우고 성주 판관이 되었다.

  • 송유경(宋有敬)

조선 개국 공신으로 태조로 부터 유충(有忠)이라는 사명과 함께 청원군(淸原君)에 훈봉되어 청주 송씨의 시조가 되었다.

지중추부사 송복원의 아들이다, 딸이 단종비(端宗妃)로 책봉되자 지돈녕부사에 올라 여량군(礪良君)에 봉해졌으며 세조(世祖)가 왕위에 오르자 판돈녕부사가 되었다.

  • 송문림(宋文琳)

친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성종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에 책봉되고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졌다. 1472년 이조참판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시호는 공무(恭武)이다.肅靖)이다.

도정 송공손(宋恭孫)의 아들이다.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 3등에 책록되었고 여원부원군(礪原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라 크게 명성을 떨쳤다.

  • 송인(宋寅)

중종의 딸 정순옹주(貞順翁主)와 혼인하여 여성위(礪城慰)가 되고 명종 때 여성군에 봉해졌으며, 시문(詩文)에 뛰어나 당대의 석학 이황, 이민구, 정염, 이이, 성혼 등과 더불어 교유하며 문명을 떨쳤고 만년에는 선조의 자문 역할을 했다. 특히 그는 호필(湖筆)의 산지(産地)인 중국 오흥(吳興)의 필법을 본받아 특출한 서법으로 해서(楷書)에 능했으며 산릉(山陵)의 지(誌)와 궁전의 현판으로부터 사대부의 비갈에 이르기까지 많은 글을 짓고 썼다.

  • 송익필(宋翼弼, 1534년 ~ 1599년)

조선 중기의 학자. 서얼 출신이기 때문에 벼슬을 하지 못했으나, 조선팔대문장가로 문장에 뛰어났고 이이(李珥)·성혼(成渾) 등과 교우하면서 성리학과 예학(禮學)을 탐구하여 조예가 깊었다.

  • 송빈(宋賓)

임진왜란때 조선 최초의 의병장으로 활약하였으며 그 공이 인정되어 통정대부 공조참의로 증직되었으며, 그 후에 다시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으로 추증되었다. 송빈의 아들 송정백(宋廷伯)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곽재우 휘하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며 영남 일대의 전투에서 여러 공적을 세운다.

현감 송복흥(宋復興)의 아들인데 선조때 문과급제해서 호조 예조 공조 정랑을 거쳐 사재감(司宰監)과 통정대부를 지내고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래성을 지키다 전사하였다.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동래 안락서원(安樂書院)과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조선 중기 무신. 1592년 임진왜란때 큰형인 송대립(宋大立)과 함께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활약하여 수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다대포 첨절제사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에 제수되었다.

  • 송세림(送世林)

중종 때 능성 현령으로 재직중 이도쇄신(吏道刷新)과 지방행정의 개혁을 상소하여 이를 시행케 했으며, 문장과 그림·글씨에 모두 뛰어났고 어면순(禦眠楯)을 저술하여 문명을 떨쳤다.

  • 송여종(宋汝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낙안 군수 신호(申浩)의 휘하에서 활약하다 이순신을 따라 종군하여 휘하 군관으로 크게 활약했는데 한산도 싸움에서 무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으로 경상좌도 수군우후(慶尙左道水軍虞侯)를 지냈다.

숙종 45년 문과에 급제하고 검열(檢閱)을 거쳐 설서(設書)로 있으면서 영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충청도 관찰사를 거쳐 동부승지가 되어 영조의 탕평책을 적극 추진했다. 이조판서에 지내면서 영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러 탕평책에 힘써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았다. 특히 왕명으로 감란록(勘亂錄)을 편찬하였다.

  • 송익보(宋翼輔)

영조 때 서로방략(西路方略)과 군민(軍民)에 관한 만언소(萬言疏)를 올려 명성을 떨쳤고 송문재(宋文載)가 영조 때 대사간과 대사헌을 거쳐 개성부 유수를 지냈으며 판중추부사 송창명(宋昌明)의 손자 송면재(宋冕載)는 순조 때 정조부사(正朝副使) 한성부판윤과 대사헌을 거쳐 예조와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헌종 때 기로소(耆老所)에 추증되었다.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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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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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송씨족보(礪山宋氏族譜)는 시도유형문화재 제139호로 1991년 4월 2일 지정되었으며, 1653년 간행하였다. 현존하는 족보 중에는 17세기 이전 족보가 별로 없는 상태라 희귀본으로서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소재지는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이며, 관리는 여산송씨종친회에서 한다.[1]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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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산송씨족보. 문화재정보센터 문화재정보. 2008년 2월 2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