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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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 인
皇甫 仁
출생1387년
사망1453년 11월 10일 (67세)
조선 한성부에서 암살됨.
성별남성
국적조선
본관영천(永川)
학력태종 14년(1414) 갑오 친시 을과 2위
경력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직업문관
부모황보림(皇甫琳)
탐진 안씨 안우(安祐)의 딸
배우자양성 이씨(陽城李氏)

황보 인(皇甫仁, 1387년 ~ 1453년)은 조선 전기의 문관 겸 정치가이다. 단종영의정을 지낸 충신이다.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사겸(四兼)·춘경(春卿), 호는 지봉(芝峰)이다.[1]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생애[편집]

1414년(태종 1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414년(태종 14)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 세종 때 장령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병조판서가 되었으며, 1440년 평안도와 함길도 체찰사(體察使)가 된 후 10년 동안 절제사 김종서(金宗瑞)와 함께 육진(六鎭)을 개척하였다. 이후 상호군이 되었고 당상관에 올라서 동부대언, 우대언, 좌대언, 지신사를 거쳐서 형조좌참판, 병조우참판 등을 지냈다. 세종 때 북도 체찰사로서 절재 김종서와 아울러 6진을 개척하고 돌아와 병조판서를 지낸 뒤에 좌참찬우찬성, 좌찬성을 거쳐서 우의정이 되었다. 그 후 1451년 문종좌의정을 거쳐서 영의정에 올랐다. 단종을 잘 보살피라는 문종의 유언을 받들어 어린 단종을 보호하다가, 1453년 수양대군에게 김종서와 함께 살해되었다. 향년 67세.

사후[편집]

1705년 숙종이 한성부판윤 민진후(閔鎭厚)의 상소를 보고 김종서와 황보인의 신원을 논의하였으며 1719년 부분적인 신원이 이루어졌다. 1746년(영조 22)에 완전히 신원되어 영조1758년 충정(忠定)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1791년(정조 15) 장릉(莊陵) 충신단(忠臣壇)에 배식(配食)되고, 1804년(순조 4) 집 앞에 정문이 세워졌으며, 1807년 부조지전(不祧之典, 조상의 위폐를 사당에서 옮기지 않고 영원히 배향하는 것)을 받았다. 영천의 임고서원(臨皐書院), 구룡포읍의 광남서원(廣南書院), 종성의 행영사(行營祠)에 제향되었다.[1]

가족[편집]

  • 할아버지 : 황보안(皇甫安)
  • 외조부 : 안우(安祐)
    • 어머니 : 탐진 안씨(耽津安氏)
    • 장인 : 이지택(李之擇)
      • 부인 : 양성 이씨(陽城李氏)
        • 아들 : 황보석
        • 아들 : 황보은
        • 아들 : 황보흠
        • 장녀 : 김만서(金晩緖)에게 출가
        • 차녀 : 홍원숙(洪元淑, 남양홍씨)[2]에게 출가
        • [몇째딸인지는 미상이고, 조선왕조실록에만 전한다] : 사위는 윤당(尹塘)이다.[3]
        • [몇째딸인지는 미상이고, 조선왕조실록에만 전한다] : 사위는 권은(權訔)이다.[4]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출처[편집]

  1.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황보인" 참조
  2. 단종 8권, 1년(1453 계유 / 명 경태(景泰) 4년) 10월 12일(을미) 9번째기사 "의금부에서 역적의 인척 홍원숙·권은·김승벽 등을 체포하여 벌하기를 청하다"
  3. 단종 10권, 2년(1454 갑술 / 명 경태(景泰) 5년) 1월 25일(정축) 4번째기사 "황보인의 사위 윤당을 경주에 옮겨 두게 하다"
  4. 세조 30권, 9년(1463 계미 / 명 천순(天順) 7년) 1월 19일(기유) 1번째기사 "의금부에 명하여 부처한 황보 인의 사위 권은을 방면토록 하다"

더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전임
류정현
조선섭정
(김종서와 공동)
1452년 6월 1일 ~ 1453년 11월 10일
후임
수양대군
전임
하연
조선의 상급 국상
1451년 7월 13일 ~ 1453년 9월 13일
후임
김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