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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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덕부(沈德符, 1328년 ~ 1401년)는 고려조선 초의 문신이자 무신, 공신이다. 자는 득지(得之). 호는 노당(蘆堂)·허강(虛江). 시호는 정안(定安)이며, 본관은 청송이다.[1]

가계[편집]

문하시중에 증직된 청화부원군(靑華府院君) 심룡(沈龍)의 장남으로, 소헌왕후의 할아버지이고, 세종의 국구 영의정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아버지이다. 또한, 태조 이성계의 부마 청원군(靑原君) 심종(沈淙)의 아버지이다. 또한,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의 형인 정양부원군(定陽府院君) 왕우(王瑀)의 사위 심정의 아버지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 무안대군 방번정양부원군 왕우의 사위이므로, 태조 이성계와는 겹사돈지간이 된다.

동생 岳隱(악은) 심원부(沈元符)는 고려의 전리판서로 고려말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농은 민안부와 더불어 고려 5은으로 불리는 고려의 충신이다. 두문동 72현의 한분으로 先訓不仕(선훈불사)란 유훈을 남겨 후손은 대대로 조선에서 벼슬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두문동으로 들어간 고려의 절신이다.

가족 관계[편집]

  • 조부 : 심연(沈淵) - 고려조 합문지후
  • 부친 : 심룡(沈龍) - 고려조 전리정랑, 증 문하시중, 청화부원군(靑華府院君)

이력[편집]

고려 충숙왕 말기인 1338년에 음보(음서)로 좌우위녹사, 참군이 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우왕 때, 밀직사에 올라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1380년문하부사가 되었을 때, 진포에 왜구가 침략하자, 도원수(都元帥)가 되어,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를 처음 사용하여, 왜구 방어에 큰 공을 세웠다. [1][2] 그리고, 1385년 문하찬성사로서, 동북면 상원수를 겸하여, 이성계와 함께, 동북면에 침략한 왜구를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해 겨울,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388년 서경도원수(西京都元帥, 요동정벌군 서열 3위)로서, 좌군도통사(요동정벌군 서열 1위) 조민수, 우군도통사(요동정벌군 서열 2위)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 회군에 참여한 후,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웠다. 창왕 때, 위화도 회군공신 2등에 책록되고, 삼사판사가 되었으며, 이성계, 정몽주, 지용기, 설장수, 성석린, 조준, 박위, 정도전과 함께,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웠다. 공양왕 때, 중흥9공신으로서, 삼한벽상공신에 책록되고, 문하시중이 되어, 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에 봉해졌다. [3] 1391년 이성계, 정몽주와 함께 안사공신에 책록되었다. 1392년 조선 개국 후에는, 조선 개국공신으로서, 위화도 회군공신 1등에 책록되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다. 청성백(靑城伯)은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으로 호칭되기도 하였다.[4] 1394년 신도궁궐조성도감의 판사 겸 수장도감제조가 되어, 1년동안에, 수도 한양의 성곽, 경복궁 등의 궁궐들과 종묘를 모두 완성시켰다. 1397년 판문하부사, 1398년 영삼사사, 1399년 좌정승에 올랐다.[1]

심덕부가 등장한 작품[편집]

각주[편집]

  1. 성씨정보 - 심덕부, 청송심씨
  2. 《태조실록》4년(1395) 4월 19일 1번째 기사
  3. 국역 고려사
  4. 《태조실록》2년(1393) 10월 10일 1번째 기사

함께 보기[편집]


전임
조준
제2대 조선문하좌정승
1399년 12월 1일 - 1400년 3월 14일
후임
성석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