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심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청송 심씨(靑松 沈氏)
청송 심씨 종문
청송 심씨 종문
관향 경상북도 청송군
시조 심홍부(沈洪孚)
주요 집성촌 강원도 인제군 남면 관대리
경기도 파주시, 화성시
경상남도 산청군, 합천군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파천면
전라남도 곡성군, 장성군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부곡리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추산리
주요 인물 심덕부, 심온, 심종, 소헌왕후, 심회, 심결, 심안의, 심순경, 심광언, 심연원, 심달원, 심통원, 심강, 인순왕후, 심의겸, 심충겸, 심우승, 심희수, 심열, 심기원, 심지원, 심익현, 심액, 심광수, 심재, 심호, 단의왕후, 심단, 심수현, 심육, 심택현, 심사정, 심능건, 심풍지, 심이지, 심환지, 심능악, 심상규, 심의신, 심의면, 심순택, 심이택, 심상훈, 심상학, 심성지, 심호택, 심흥택, 심의석, 심훈, 심수관, 심흥선, 심의환, 심우영, 심정구, 심명보, 심재홍, 심대평, 심상명, 심재권, 심재철, 심상정
인구(2015년) 240,768명
청송 심씨 대종회

청송 심씨(靑松 沈氏)는 경상북도 청송군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편집]

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역임했다. 그의 생몰연대나 사적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어 알 수가 없다.

4세손인 심덕부(沈德符)는 고려 우왕 때에 진포대첩의 대승으로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오르고 왜구토벌에 공을 세워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서경도원수(西京都元帥)로서 위화도회군을 도운 이후, 공양왕 즉위 후 중흥 9공신으로 충근양절익찬좌명공신벽상삼한삼중대광문하시중(忠勤亮節翊贊佐命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門下侍中)에 오르고 청성군충의백(靑城君忠義伯)에 봉해졌다. 조선이 개국하자, 1393년 위화도 회군 1등 공신에 책록되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다. 1394년 신도궁궐조성도감 판사로서 수장 도감 제조가 되어, 새 도성인 한양에 궁궐(경복궁)과 종묘를 건설하는 일을 총괄하여 새 왕조의 신도 건설에 큰 역할을 하였다. 1398년 판문하부사, 영삼사사를 거쳐, 1399년 문하부 좌정승에 이르렀다.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면서 조선의 세도가문이 되었다.

반면에, 심덕부(沈德符)의 아우 심원부(沈元符)는 고려 말에 여러 관직을 거쳐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이르렀으나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으며, 후손들도 그의 유훈을 받들어 선훈불사(先訓不仕)라 하여 대대로 벼슬을 멀리 하였다.

인물[편집]

심덕부의 아들 7형제 대에서 가세가 크게 융성하여 가장 화려한 인맥(人脈)을 이루었다. 세종(世宗)의 장인이면서도 상왕(上王)인 태종(太宗)의 비위에 거슬려 끝내 왕명(王命)으로 죽음을 당했던 심온(沈溫)은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의 다섯째 아들이다. 심온(溫)의 아우 심종(沈淙)이 태조(太祖)의 부마로 청원군(靑原君)에 봉해졌고, 심온(沈溫)의 둘째 아들 심회(沈澮)는 세조 때 영의정(領議政)을 역임하여, 4세 심덕부(沈德符), 5세 심온(沈溫), 6세 심회(沈澮) 3대 영상(領相)의 영예를 누렸다.

  • 심안의(沈安義) : 조선 세종의 부마 청성위(靑城尉)
  • 심연원(沈連源) : 조선 명종 때 영의정(領議政)
  • 심통원(沈通源) : 조선 명종 때 좌의정(左議政)
  • 심강(沈鋼) : 조선 명종의 국구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 심광언(沈光彦) : 조선 명종 때 형조판서(刑曹判書)
  • 심의겸(沈義謙) : 서인(西人)의 초대 영수, 조선 선조 때 병조판서(兵曹判書)
  • 심충겸(沈忠謙) : 조선 선조 때 병조판서(兵曹判書)
  • 심희수(沈喜壽) : 조선 선조 때 청백리(淸白吏) · 대제학(大提學) · 좌의정(左議政), 조선 광해군 때 우의정(右議政)
  • 심열(沈悅) : 조선 광해군 때 예조판서(禮曹判書), 조선 인조 때 영의정(領議政)
  • 심기원(沈器遠) : 조선 인조 때 인조반정 1등공신, 좌의정(左議政)
  • 심집(沈諿) : 조선 인조 때 형조판서(刑曹判書)
  • 심액(沈詻) : 조선 인조 · 효종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 심지원(沈之源) : 조선 효종 때 영의정(領議政)
  • 심익현(沈益顯) : 조선 효종의 부마 청평도위(靑平都尉)
  • 심광수(沈光洙) : 조선 효종 때 남인 산림(山林)
  • 심재(沈梓) : 조선 숙종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 심호(沈浩) : 조선 경종의 국구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
  • 심단(沈檀) : 조선 경종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조선 영조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 봉조하(奉朝賀)
  • 심수현(沈壽賢) : 조선 영조 때 준소(峻少)의 영수, 영의정(領議政)
  • 심육(沈錥) : 조선 영조 때 소론 산림(山林)
  • 심택현(沈宅賢) : 조선 영조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 심각(沈殼) : 조선 영조 때 예조판서(禮曹判書)
  • 심성진(沈星鎭) : 조선 영조 때 예조판서(禮曹判書)
  • 심사정(沈師正) : 조선 영조 때 문인화가(文人畵家)
  • 심능건(沈能建) : 조선 영조의 부마 청성위(靑城尉)
  • 심수(沈鏽) : 조선 영조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 심풍지(沈豊之) : 조선 정조 때 예조판서(禮曹判書)
  • 심이지(沈頤之) : 조선 정조 때 호조판서(戶曹判書)
  • 심환지(沈煥之) : 노론 벽파(僻派)의 영수, 조선 정조 때 좌의정(左議政), 조선 순조 때 영의정(領議政)
  • 심능악(沈能岳) : 조선 순조 · 헌종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 심상규(沈象奎) : 조선 정조의 초계문신(抄啓文臣), 조선 순조 때 노론 시파(時派)의 영수, 대제학(大提學), 영의정(領議政)
  • 심대윤(沈大允) : 조선 후기 실학자
  • 심의신(沈宜臣) : 조선 헌종 때 청백리(淸白吏) · 이조참판(吏曹參判)
  • 심낙신(沈樂臣) : 조선 철종 때 포도대장(捕盜大將) · 어영대장(御營大將) · 총융사(摠戎使) ·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 심의면(沈宜冕) : 조선 철종 때 형조판서(刑曹判書)
  • 심순택(沈舜澤) : 조선 고종 때 온건개화파(穩健開化派)의 영수, 영의정(領議政), 총리대신(總理大臣), 대한제국 초대 의정대신(議政大臣), 공작(公爵)
  • 심이택(沈履澤) : 조선 고종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내무독판(內務督辦)
  • 심상훈(沈相熏) : 조선 고종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대한제국 초대 탁지부 대신(度支部 大臣), 양지아문 • 철도원 • 혜민원 • 중앙은행 • 표훈원 총재(總裁), 군부대신(軍部大臣), 내부대신(內部大臣), 참정대신(參政大臣)
  • 심상학(沈相學) : 조선 고종 때 일본 문물 시찰 신사유람단의 일원,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 영국 • 독일 • 러시아 • 프랑스 • 벨기에 5개국의 전권 대신(全權大臣)
  • 심동신(沈東臣) : 조선 고종 때 대사헌(大司憲)
  • 심성지(沈誠之) : 구한말의 항일의병장으로, 조선 고종 때 돈녕부 도정을 지냈으며, 1896년 을미의병 때에는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의병대장이 되어 항일의병활동을 벌였다.
  • 심호택(沈琥澤) :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沈處大)의 7대손으로 그의 아들 대까지 9대에 걸쳐 무려 250여년간 만석의 부를 누렸다. 청송 심부자는 조선시대 12대 만석꾼인 경주 최부자와 함께 영남의 대부호로 한때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던 대표적인 집안이다. 조선 고종 때 송소고택(松韶古宅)을 건립하였으며 내부주사(內部主事)를 지냈다.
  • 심흥택(沈興澤) : 조선 고종 때 울릉군수로 독도(獨島)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한 인물
  • 심의석(沈宜錫) : 대한제국 때 덕수궁 석조전 건조를 감독하였고, 우리 나라 최초의 극장이며 최초의 원형극장인 협률사(協律社)도 건조하였다.
  • 심훈(沈熏) : 애국계몽운동가, 소설가, 본명은 심대섭(沈大燮)
  • 심수관(沈壽官) : 일본 사쓰마자기[薩摩燒]의 종가(宗家)이자 시조인 심당길(沈當吉)의 후손으로 세계적인 도자기 명문가이다.

본관[편집]

경상북도 중부 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인데 신라 때 적선으로 고쳐서 야성군(野城郡: 현 영덕군)에 속했다가, 고려 초에 부이현이 되고 청부현(靑鳧縣)으로 고쳐서 예주(禮州: 영해)에 속했다. 조선 세종 즉위년(1418년)에 진보현과 청보현(靑寶縣)을 합쳐서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하였고, 1424년(세종 6년) 진보현을 분리하여 독립시키는 한편 송생현(松生縣)을 합쳐서 고을 명칭을 현재의 명칭인 청송군(靑松郡)이라 개칭하였다. 1459년(세조 5년) 청송군(靑松郡)을 승격시켜 도호부(都護府)로 삼았다. 1896년 8월 4일 경상북도 청송군으로 개편하였다.

분파[편집]

경파인 심덕부는 조선 개국 후에 좌정승을 지내고 그의 후손은 대대로 서울에 살면서 벼슬을 지냈으나, 향파인 심원부의 자손들은 고려가 망하자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간 심원부의 유훈을 지켜 대대로 고향에 살면서 벼슬을 멀리하였다. 경(京)파는 심덕부의 아들 7형제에서 도총제공파(都摠制公派)·판사공파(判事公派)·성주지사공파(成州知事公派)·인수부윤공파(仁壽府尹公派)·안효공파(安孝公派)·청원군파(靑原君派)·동지총공파(同知摠公派)의 7파로 갈라진다. 그 중에서도 넷째 집인 인수부윤공파와, 다섯째 집인 안효공파가 번성하여 굵직한 벼슬을 도맡아 했다.

  • 도총제공파(都摠制公派) - 심인봉
  • 판사공파(判事公派) - 심의구
  • 성주사공파(成州知事公派) - 심계년
  • 인수부윤공파(仁壽府尹公派) - 심징
  • 안효공파(安孝公派) - 심온
  • 청원군파(靑原君派) - 심종
  • 동지총공파(同知摠公派) - 심정
  • 영동정공파(令同正公派) - 심천윤
  • 현령공파(縣令公派) - 심천주
  • 정랑공파(正郞公派) - 심덕귀
  • 목사공파(牧使公派) - 심춘우
  • 감찰공파(監察公派) - 심언룡
  • 부위공파(副尉公派) - 심언충

항렬자[편집]

  • 대동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