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옹주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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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옹주
貞安翁主
조선 세종의 옹주
신상정보
출생일 1441년
사망일 1461년 10월 16일 (음력)
부친 세종
모친 숙원 이씨
배우자 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
자녀 1남 1녀
심언 · 최맹사의 처 심씨
능묘 정안옹주묘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 산16

정안옹주(貞安翁主, 1441년[1] ~ 1461년 음력 10월 16일)는 조선의 옹주로, 세종의 18남4녀중 막내이며, 어머니는 숙원 이씨이다.

생애[편집]

1441년(세종 23년), 세종숙원 이씨의 딸로 태어났다.

1453년(단종 1년), 단종강맹경에게 명하여 사족 자제 중에 배필을 찾게 한 끝에[2] 관찰사 심선(沈璿)의 아들 청성위(靑城尉) 심안의에게 하가하여 1남 1녀를 낳았다. 단종은 이에 면포 6백필로 집을 사서 하사하였다.

1461년(세조 7년) 10월 16일 훙서하였으며 이에 세조는 사흘간 조회를 중지하고 쌀·콩 1백 석과 종이 2백 권, 백저포(白苧布)·면포(綿布) 각 10필, 베[布] 60필을 부조하였다.[3] 정안옹주의 남편인 심안의는 1476년(성종 7년)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에 위치하고 있다.

정안옹주의 어머니인 숙원 이씨는 딸과 사위가 죽은 이후에도 생존하여 1490년(성종 21년), 자신의 외손자이자 정안옹주의 아들인 심언(沈漹)의 관직을 당시 국구였던 정현왕후의 아버지인 영원부원군 윤호에게 청탁한 일로 물의를 빚었다.[4]

가족 관계[편집]

각주[편집]

  1. 문종실록》 13권, 문종 2년(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4월 27일 (신묘)
  2. 단종실록》 4권, 단종 즉위년(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10월 21일 (기유)
    강맹경에게 명하여 정안옹주의 배필을 삼을 사족 자제를 가려 뽑게 하다
  3. 세조실록》 26권, 세조 7년(1461년 명 천순(天順) 5년) 10월 16일 (임오)
    정안옹주의 졸기
    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의 아내 정안옹주(貞安翁主)가 졸(卒)하였는데, 옹주는 세종의 후궁(後宮)의 소출이었다.

    조회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쌀·콩 아울러 1백 석과 종이 2백 권, 백저포(白苧布)·면포(綿布) 각가 10필, 베[布] 60필을 부의(賻儀)로 주었다.

  4. 성종실록》 241권, 성종 21년(1490년 명 홍치(弘治) 3년) 6월 7일 (무자)
    의금부에서 심언의 일에 연루된 윤호 · 봉보부인 등에 대해 아뢰다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심언(沈漹)이 공초(供招)하기를, ‘외조모 숙원 이씨(淑媛 李氏)가 봉보부인에게 편간을 청하여 영돈녕(領敦寧) 윤호(尹壕)에게 보내고 사복 판관(司僕判官)을 삼도록 요구하였습니다.’ 하였는데,
    (중략)
  5. 《최인수 모 심씨 묘지명(崔仁壽母沈氏墓誌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