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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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옹주
옹주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출생지 조선
사망일 미상
사망지 조선
왕조 조선 왕조
부친 태종
모친 선빈 순흥 안씨
배우자 전의군 이완(全義君 李梡)
자녀 6남 1녀
이효충(李孝忠), 이신충(李信忠),
이예충(李禮忠), 이제충(李悌忠),
이의충(李義忠), 이경충(李敬忠),
강자정(姜子正)의 처

경신옹주(敬愼翁主, 생몰년 미상)는 조선의 왕족으로, 제3대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의 서10녀이며, 어머니는 선빈 안씨(善嬪 安氏, ? ~1468)이다. 전의군(全義君) 이완(李梡, ?~1455)과 혼인하여 6남 1녀를 두었다.

생애[편집]

안씨의 소생으로 전의군(全義君) 이완(李梡)에게 하가하여 아들 갯똥[介同]을 두었다. 개똥이 집에서 부리는 노비 석류(石榴)의 아들 사민(思敏)과 장난치며 놀다가 사민에게 욕을 먹고, 석류의 딸 구장(仇莊)이 옹주(翁主)를 나무란 것을 알고 이완은 석류에게 형장을 쳤는데, 엿새만에 석류가 죽었다. 이일로 이완은 의금부에 갇혀 국문(鞫問)을 받고, 직첩(職牒)은 회수되고 진천(鎭川)에 부처(付處)되었다.[1]

노비 분배 문제로 어머니 안씨와 송사를 다투어 안씨가 딸의 불효를 호소하니 세조가 의금부에 이 일을 조사시킨 끝에 경신옹주의 녹봉을 빼앗고 그 아들을 귀양보냈다. 또한 안씨의 임종에 이르러서는 올케에 해당하는 오빠 익녕군(益寧君)의 아내 박씨(朴氏)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2] 같은 해 예종이 즉위하여 거둔 녹봉을 다시 경신옹주에게 돌려주었다. 능원은 경기도 양주시 고령에 있다.

가족관계[편집]

친정 전주 이씨(全州 李氏)

  • 조부 : 제1대 태조대왕(太祖大王, 1335~1408, 재위: 1392~1398)
  • 조모 : 신의왕후 안변 한씨(神懿王后 安邊 韓氏, 1337~1391)
    • 아버지 : 제3대 태종대왕(太宗大王, 1367~1422, 재위: 1400~1418)
  • 외조부 : 검교 판한성부사 안의(檢校 判漢城府事 安義)

시가 전의 이씨(全義 李氏)

  • 시아버지 : 이공전(李恭全)
    • 부마 : 봉헌대부(奉憲大夫) 전의군 이완(全義君 李梡, ?~1455)
      • 장남 : 이효충(李孝忠)
      • 차남 : 이신충(李信忠)
      • 삼남 : 이예충(李禮忠)
      • 사남 : 이제충(李悌忠)
      • 오남 : 이의충(李義忠) 이개동(李介同)
      • 육남 : 이경충(李敬忠)
      • 장녀 : 진주인 강자정(姜子正)과 혼인

각주[편집]

  1. 《조선왕조실록》 세종100권, 1443년(세종 25) 5월 8일
  2. 《조선왕조실록》 세조 46권, 1468년(세조 14) 6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