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옹주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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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옹주
옹주
신상정보
출생일 1595년
출생지 조선 해주 행궁
사망일 1666년
사망지 조선
매장지 정정옹주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왕조 조선
부친 선조
모친 정빈 홍씨
배우자 진안위 유적
자녀 양자 유명전

정정옹주(貞正翁主, 1595년 ~ 1666년)는 조선의 왕족이다. 조선의 제14대 선조후궁 정빈 홍씨의 딸이다. , 본관전주이다.

생애[편집]

가계[편집]

생모 정빈 홍씨는 남양 홍씨 홍여겸의 딸로[1], 1580년(선조 13년) 종2품 숙의에 책봉되어 입궁하였다[2]. 이후 정1품 빈에 올랐으며, 인조 연간에 사망하였다[3].

정정옹주는 경창군의 친누나이며, 광해군정원군(인조의 아버지) 등의 이복 동생이자 영창대군에게는 이복 누나가 된다.

옹주 시절[편집]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5년(선조 28년) 황해도 해주의 행궁에서 태어났다[4]. 정정옹주는 어릴 때부터 자질이 뛰어났으며, 자라면서 단정하고 의젓하였다고 한다. 10살 때인 1604년(선조 37년) 정식으로 옹주에 책봉되어 정정옹주(貞正翁主)가 되었다[4]. 2년 후인 1606년(선조 39년) 교리를 지낸 진주 유씨 유시행의 아들 유적과의 혼인이 결정되어 유적은 진안위(晋安尉)에 책봉되었으나[4], 혼례 직전 유시행이 사망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혼례가 연기되었다[5]. 이어 1608년(선조 41년)에는 부왕 선조마저 승하하는 바람에 두 사람의 혼인은 탈상 후인 1610년(광해군 2년)에야 이루어졌다[6]. 두 사람은 유시행이 죽었을 때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일대에 터를 잡아 장사를 지냈고, 이후 그 지역에서 대를 이어 살았다[7][8].

한편 정정옹주와 남편 유적은 인목왕후를 폐위하는 것에 반대하여 유배의 위기까지 몰렸으며, 이후 남편 유적은 1619년(광해군 11년) 음력 8월 17일 25세의 젊은 나이로 자식 없이 생을 마감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폐모론에 동참하지 않은 유적을 위대하게 생각하였다고 한다[4][9]. 이후 인조가 즉위하여 유적과 정정옹주의 공을 치하하고 옹주를 극진히 대접하였다[4].

사망과 후손[편집]

정정옹주는 1666년(현종 7년) 향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옹주가 죽자 현종은 정사를 중지하고 장례 비용을 지원하였으며, 남편 진안위 유적의 묘에 합장토록 하였다. 현재 그녀의 묘소인 정정옹주묘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으며, 묘소의 관리는 진주 유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1991년 11월 2일 안산시의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6].

한편 유적과 정정옹주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이에 따라 유적의 동생인 유영의 아들 유명전을 양자로 입양하여 후사를 이었으나, 유명전 마저도 요절하여 후사가 끊어지고 말았다[4][10].

가족 관계[편집]

친정

  • 아버지 : 제14대 선조(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
  • 어머니 : 정빈 홍씨(貞嬪 洪氏, 1563~1638)
    • 동생 : 경창군 주(慶昌君 珘, 1596~1644)

시가

출처[편집]

  1. 전주이씨대동종약원 - 경창군 약사
  2. 《조선왕조실록》선조 14권, 13년(1580 경진 / 명 만력 8년) 5월 26일(갑오) 1번째기사
  3. 《조선왕조실록》인조 37권, 16년(1638 무인 / 명 숭정 11년) 11월 18일(병자) 2번째기사
  4. 디지털안산문화대전 〈정정옹주〉
  5. 《조선왕조실록》선조 198권, 39년(1606 병오 / 명 만력 34년) 4월 10일(무신) 3번째기사
  6. 디지털안산문화대전 〈정정옹주 묘〉
  7. 디지털안산문화대전 〈안산 청문당〉
  8. 디지털안산문화대전 〈개멸〉
  9. 《조선왕조실록》광해 143권, 11년(1619 기미 / 명 만력 47년) 8월 17일(정묘) 2번째기사
  10. 국조인물고 〈유영〉
  11. 디지털안산문화대전 〈유시행〉
  12. 디지털안산문화대전 〈유명전〉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