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현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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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공주
지위
공주
이름
옥현(玉賢)
신상정보
출생일 1530년
출생지 조선
사망일 1584년
왕조 조선 왕조
부친 중종
모친 문정왕후 파평 윤씨
배우자 영천위 신의(靈川尉 申檥)
자녀 1남
신사정(申士楨)

경현공주(敬顯公主, 1530년 ~ 1584년)는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中宗)과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의 셋째 딸이며, 명종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이름은 옥현(玉賢)이다.[1]

성종숙의 홍씨 소생인 이복 고모 혜숙옹주와는 시가로는 시조모와 손자며느리가 된다. 혜숙옹주 이수란은 그의 아버지 중종의 이복 누나가 된다.

생애[편집]

1530년(중종 25년) 중종과 문정왕후의 3녀로 태어났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문정왕후는 경현공주를 낳은지 7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시어머니인 정현왕후가 병상에 눕자 간호를 하였고, 정현왕후는 이에 감동하였다고 한다.[2]

1537년(중종 32년) 경현공주에 봉해졌고 1541년(중종 36년) 목사 신수경(申秀涇)의 아들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에게 하가하여 1남을 두었으나 혼인 관계는 평탄치 못하였고 가정사는 불운하였다.

그의 남편인 영천위 신의는 패악무도하여 폭행을 저질러 통천으로 유배되었으며 후에 살인까지 저질러 직첩을 박탈당하였다. 또한 1552년(명종 8년) 경현공주가 병에 들자, 신의는 기생집 출입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첩과 기생을 불러 공주 앞에서 희롱하고 간음하는 등의 부도덕적인 행동으로 마침내 1555년(명종 11년) 위리안치 되었다.

1565년(명종 21년), 문정왕후의 국상중에 공주의 아들인 신사정(申士楨)이 기생 석빙정과 간통하고 공주 집의 재물과 외조모인 문정왕후가 하사한 물건까지 석빙정에게 건내주어 문제가 되었으며[3] 1568년(선조 1년)에는 왕이 전교하기를 신사정이 아버지 신의가 죄를 지어 형을 받음에도 감정이 태연하고,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도 나와보지 않는 등의 불효를 저질렀음을 이유로 사판에서 이름을 삭제시키고 유배를 보냈다.

아들과 남편 모두 귀양을 보낸 상태에서, 남편 신의가 서울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경현공주를 박대하고 의복과 음식을 넉넉하게 주지 않음을 이유로 보성으로 위리안치되었다. 이후 1584년(선조 17년) 5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왕가
  • 조부 : 제9대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5)
  • 조모 : 정현왕후(貞顯王后, 1462~1530)
    • 아버지 : 제11대 중종(中宗, 1488~1544, 재위 1506~1544)
  • 외조부 : 윤지임(尹之任, 1475~1534)
  • 외조모 : 전성부부인 이씨(全城府夫人 李氏, 1475~1511)
시가
  • 시할아버지 : 고원위 신항(高原尉 申沆)
  • 시할머니 : 혜숙옹주 이수란(惠淑翁主 李秀蘭), 성종숙의 홍씨 소생
  • 시아버지 : 신수경(申秀涇)
  • 시어머니 : 삭녕 최씨
    • 부마 : 영천위 신의(靈川尉 申檥)
      • 아들: 신사정(申士楨)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선원록》
  2. 명종실록》 31권, 명종 20년(1565년 명 가정(嘉靖) 44년) 4월 20일 병술 2번째기사
  3. 명종실록》 32권, 명종 21년(1566년 명 가정(嘉靖) 45년) 5월 28일 무오 1번째기사
    국상 때에 경현공주의 아들 신사정을 유혹한 기생 석빙정을 치죄하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