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경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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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경공주
지위
공주
신상정보
출생일 1648년
출생지 조선
사망일 1671년 1월 9일
왕조 조선 왕조
부친 효종
모친 인선왕후 덕수 장씨
배우자 흥평위 원몽린(興平尉 元夢麟)
자녀 1녀
원숙희(元淑喜)

숙경공주(淑敬公主, 1648년 ~ 1671년 1월 9일)는 조선의 왕족으로 효종(孝宗, 1619~1659, 재위 : 1649~1659)과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 1618~1674)의 6녀이다.

생애[편집]

우의정 원두표(元斗杓, 1593~1664)의 손자이자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 원만리(元萬里)의 아들 흥평위(興平尉) 원몽린(元夢麟)과 혼인하였다. 자식은 외동딸밖에 없어 시동생의 아들 원명구(元命龜)를 양자로 들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1] 1671년(현종 12) 숙경공주가 마마로 위독해지자 그 시아버지인 원만리를 불러 병구완을 하게 하였으나 곧 죽었다. 오빠인 현종이 백관과 함께 숭문당에서 곡을 하였다. 당시 현종의 건강이 좋지 않아 이를 만류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현종이 듣지 않았다.[2] 남편 원몽린도 그로부터 3년 뒤 죽었다. 원몽린의 묘비에는 공주가 《소학》과 《내훈》에 통달하였다고 적고 있다.[1]

사후[편집]

묘소는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 죽서원몽린묘역에 있다. 2004년 5월 6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29호로 지정되었다. 봉분은 단분으로 남편 원몽린과 합장묘이다

석물로는 묘비 1기, 상석,향로석 각 1기, 망주석,문인석 각 1쌍 및 계체석 등이 있다. 봉분은 원형의 호석을 두르고 있고 봉분 주위에는 곡장(曲墻)이 설치되어 있다. 묘역에 이르는 입구에는 신도비가 1기 세워져 있다. 묘역 좌우에는 망주석과 그 앞쪽으로 문인석이 각각 1쌍씩 배치되어 있다. 망주석은 폭이 159㎝의 규모로 좌우측 모두 올라가는 형태의 쥐모양이 양각되어 있다. 문인석의 형태는 양관조복에 홀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조복 앞면에는 홀을 든 손등으로부터 포(袍)의 주름이 묘사되어 있고 뒷면에는 연화문양이 있는 대(帶)와 여의운문이 양각되어 있는 후수(後綬)를 묘사하였다. 묘소를 둘러싸고 있는 곡장은 좌우측면만 높게 조성되어 묘역을 보호하고 후면은 3단의 석축으로만 쌓고 뒤쪽에 조성되어 있는 묘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돌계단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가족 관계[편집]

왕가(王家 : 전주 이씨)

  • 조부 : 제16대 인조대왕(仁祖大王, 1595~1649, 재위 1623~1649)
  • 조모 : 인렬왕후 청주 한씨(仁烈王后 淸州 韓氏, 1594~1636)
    • 아버지 : 제17대 효종대왕(孝宗大王, 1619~1659, 재위 : 1649~1659)
  • 외조부 : 우의정 신풍부원군 문충공 장유(右議政 新豊府院君 文忠公 張維, 1587∼1638)
  • 외조모 : 영가부부인 안동 김씨(永嘉府夫人 安東 金氏)

시가 원주 원씨(原州 元氏)

  • 시아버지 : 원만리(元萬里, 1624~1672)
    • 부마 : 흥평위 효헌공 원몽린(興平尉 孝憲公 元夢麟, 1648~1674)
      • 장녀 : 원숙희(元淑喜, 1668~?)
      • 양자 : 원명구(元命龜) - 동생 원몽익(元夢翼)의 아들, 인현왕후의 외종질

각주[편집]

  1. 《국역 국조인물고》 권6 국척(國戚) 원몽린의 묘비명(墓碑銘)
  2. 《현종실록》 19권, 1671년(현종 12) 1월 9일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