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협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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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협옹주
옹주
배우자 영성위 신광수(永城尉 申光洙)
자녀 양자 신재선(申在善)
왕조 조선 왕조
부친 영조
모친 영빈 전의 이씨
친척 진종(이복오빠), 장조(동생),
화평옹주(언니), 화완옹주(동생)
출생 1733년 음력 3월 7일
조선
사망 1752년 음력 11월 27일
국적 조선

화협옹주(和協翁主, 1733년 음력 3월 7일 ~ 1752년 음력 11월 27일)는 조선의 왕족으로, 영조(英祖, 1694~1776, 재위 1724~1776)의 서녀이며, 생모는 영빈 이씨(暎嬪 李氏, 1696~1764)이다.

생애[편집]

영빈 이씨 소생으로, 사도세자의 친누나이다. 1743년(영조 19)에 화협옹주(和協翁主)로 봉해지고 같은 해에 영의정을 지낸 신만(申晩)의 아들 영성위(永城尉) 신광수(申光綏)에게 하가하였다. 옹주가 혼례를 올린 시기에는 마침 가뭄이 닥쳤기 때문에 영조는 혼례를 미루려 하였으나 신하들의 간언으로 검소하게 치렀다.[1]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의하면, 화협옹주는 용모도 뛰어나고 효성도 있었으나 영조에게 줄곧 딸만 태어났던 탓에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평소 영조는 친국을 하면 반드시 사도세자에게 들러 "밥 먹었느냐?"고 물은 후, 대답을 받으면 자신의 귀를 씻고 돌아갔는데, 귀를 씻은 물을 화협옹주의 집이 있는 쪽으로 버렸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도세자는 화협옹주를 대할 때마다 "우리 남매는 씻는 자비(씻기 전 준비 과정)로구나!"라며 웃었다고 한다. 또 영조는 화협옹주를 다른 형제들과는 같은 공간에 있지도 못하게 하였고, 옹주의 남편인 신광수마저도 영조에게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2]

1752년 11월 27일에 요절하였다. 무덤은 경기도 남양주시 평구마을에 있다.

가족 관계[편집]

왕가(王家 : 전주 이씨)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57권, 1743년(영조 19) 윤4월 28일
  2. 혜경궁 홍씨 (2003년 11월 1일). 《내 붓을 들어 한의 세월을 적는다, 한중록》. 서해문집. 112~115쪽. ISBN 89-7483-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