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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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안공주
慶安公主
지위
조선 태종의 공주
이름
별호 경안궁주(慶安宮主)
신상정보
출생일 1393년
사망일 1415년 음력 4월 22일
부친 태종
모친 원경왕후 민씨
배우자 길창군(吉昌君) 권규(權跬)
자녀 2남 1녀
동지돈령 권담(同知敦寧 權聃),
지중추 권총(知中樞 權聰)

경안공주(慶安公主, 1393년 ~ 1415년 4월 22일)는 조선의 공주로, 태종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딸이다.

생애[편집]

경안공주는 1393년(태조 2년), 당시 정안군이었던 태종과 군부인 민씨(원경왕후)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태종이 즉위하면서 경안궁주(慶安宮主)로 책봉되었다.

1403년(태종 3년) 12월 18일, 권근(權近)의 아들이자, 이존오(李存吾)의 외손자인 길창군(吉昌君) 권규(權跬)와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1415년(태종 15년) 4월 22일,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경안궁주의 졸기

경안궁주(慶安宮主)가 졸(卒)하였다.
궁주(宮主)는 임금의 셋째 딸인데, 나면서부터 정숙하고 예뻤으며,
총명과 지혜도 보통 사람과 달라서, 임금과 중전[兩宮]의 사랑을 한데 모았었다.
길천군(吉川君) 권규(權跬)에게 시집가니,
부덕(婦德)이 있어서 시부모를 섬기는데 예절을 극진히 하였고,
가정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었다.
죽으니 나이가 23세로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임금이 애도하여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대·소염(大小斂)에 소용되는 물건이 부족하므로,
명하여 상의원(尙衣院)의 의대(衣襨)로 부의(賻儀)를 주게 하고,
장사는 종친(宗親)의 상등례(上等禮)를 쓰게 하였다.
권규가 불사(佛事)를 행하지 못하게 청하여, 한결같이 《예경(禮經)》의 제도에 따랐다.
궁주와 충녕대군(忠寧大君)은 천성과 기품이 서로 닮아서,
궁중에서 그 어짊[賢]을 함께 일컬었다.
궁주는 매양 충녕의 덕기(德器)가 날로 이루어짐을 감탄하였으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태종은 경안공주의 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의관 양홍달(楊弘達)의 과실이 있었다 하여 그 신분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었다.[1]

가족 관계[편집]

  • 남편 : 길창군 권규(吉昌君 權跬, 1393 ~ 1421)
    • 장남 : 동지돈령부사 권담(同知敦寧府事 權聃, ? ~1439년경)
    • 차남 : 지중추부사 영정공 권총(知中樞府事 靈靖公 權聰, 1413 ~ 1480)
      • 며느리 : 최사강(崔士康)의 딸 전주 최씨(貞夫人 全州 崔氏)
    • 장녀 : 조졸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각주[편집]

  1. 태종실록》 35권, 태종 18년(1418년) 4월 6일(병술)
  2. 세종실록》 87권, 세종 21년(1439년) 11월 22일(병인)
  3. 헌릉신도비문
    경안공주(慶安公主)가 2남을 낳았는데, 장남은 한성 소윤(漢城少尹) 정연(鄭淵)의 딸에게 장가들었고, 다음은 아직 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