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경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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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경왕후
(헌경의황후)
세자빈
재위 1744년 ~ 1762년
전임자 현빈 조씨(효순왕후)
후임자 빈궁 김씨(효의왕후) - 세손빈
추존 왕후
추존 황후
재위 추존
별명 왕세자빈, 혜빈, 혜경궁
배우자 장조
자녀 의소세자
정조
청연공주
청선공주
부모 홍봉한 / 한산부부인 이씨
출생 영조 11년(1735) 음력 6월 18일
반송방(盤松坊) 외가
사망 순조 15년(1815) 음력 12월 15일 (80세)
조선 한성부 창경궁 경춘전(景春殿)
능묘 융릉

헌경왕후 홍씨(獻敬王后 洪氏, 1735년 8월 6일/음력 6월 18일 ~ 1816년 1월 13일/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왕세자빈, 추존왕비로, 대한제국의 추존황후이기도 하다. 영조의 차남 장조(莊祖, 사도세자)의 비이자, 정조의 어머니이다. 원래 시호는 헌경혜빈(獻敬惠賓)이었으나[1], 고종때 왕후로,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로, 정조가 내린 궁호인 혜경궁(惠慶宮) 또는 혜경궁 홍씨로도 알려져 있다.

생전에 받은 존호로는 1778년(정조 2년)에 효강(孝康), 1783년(정조 7년) 자희(慈禧), 1784년(정조 8년) 정선(貞宣), 1795년(정조 19)에는 그의 회갑을 기념하여 휘목(徽穆)이란 존호를 받고 효강자희정선휘목혜빈이 되었다. 정조 즉위 후에는 정조의 생모였으므로 법적으로는 혜빈이었지만 혜빈이라는 칭호 대신 혜경궁으로 불렸다. 흔히 경의왕후(敬懿王后)라 하지만 죽은 후 받은 시호가 헌경이었고 의(懿) 자는 황후로 추존된 후 받은 제호(帝號)로 이는 잘못된 표기이다. 한중록의 저자이다. 본관은 풍산이고 서울 출신.

생애[편집]

선조의 7대손으로, 선조의 부마 홍주원정명공주의 후손이다. 그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 홍현보는 태몽을 꾸고, 그가 태어나자 아들 내외에게 특별한 아이라고 예상하였다. 1735년에 한성부 반송반에서 홍봉한(洪鳳漢)과 한산부부인 이씨의 둘째 딸로 태어나, 1743년(영조 19년)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바로 영조의 특명으로 아버지 홍봉한은 그에게 《소학(小學)》, 《내훈(內訓)》, 《어제훈서(御製訓書)》를 가르쳤다 한다. 영조 20년인 1744년에 10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되어,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낳은 아들로는 의소세손정조가 있다.

나경언 사건[편집]

1762년 5월 22일나경언이란 자가 사도세자의 10가지 비행을 고변하자, 영조는 친히 국문을 하였다. 나경언은 액정별감 나상언의 형으로 사람됨이 불량하고 남을 잘 속였다. 가산이 탕진되어 자립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세자를 제거할 계책을 내어 형조에 글을 올렸다.[2]

1762년 7월 4일(윤5월 13일) 부왕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뒤주에 가두는 참혹한 형벌을 내렸다.[3]

1762년 7월 12일(윤5월 21일)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자는 뒤주에서 나오지 못하고 폭염 속에서 사경을 헤매었고 결국 뒤주에 갇힌 지 8일 만에 아사(餓死)하였다. 영조가 세자에게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홍씨에게는 '혜빈(惠嬪)'의 호를 내렸다.[4]

임오화변의 원인으로 영조가 노론을 견제키 위해 키운 외척계 탕평당인 홍봉한 계열과 영조의 탕평에 반발하던 노론계의 대립으로 기행을 일삼던 사도세자 문제가 정치적으로 떠올랐는데 반 탕평파에서 홍봉한을 공격하기 위해 그의 약점이던 사도세자 문제를 정치 문제화 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홍봉한은 이를 덮기 위해 뇌물까지 제공하며 은폐하려 했지만 나경언의 고변까지 들어가고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상태까지 오자 영조가 종사를 위해 아들을 포기했고 손자를 지키기 위해 홍봉한에게 자신의 명을 따르도록 종용했다고 한다.[출처 필요] 당시 상당한 상소에서 사도세자의 비행을 은폐하는 홍봉한에 대한 공격이 나온다.

1775년에 영조가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자 홍인한은 극력 반대하였고, 이 문제로 정조의 미움을 사서 정조 즉위 후 사사된다. 홍봉한은 1770년(영조 46년)경 반대파 김귀주, 정후겸의 공격으로 정계에서 영원히 은퇴하고 봉조하의 직함으로 교외에 거주했으며 이후에도 이복동생이던 홍인한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형을 배신했다고 정조가 말한적이 있다. 사도세자 생전부터 있었던 정순왕후 외척가문과의 정쟁으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이후에도 김귀주 정파의 홍봉한 탄핵이 여러번 있었으며 정조 즉위초에도, 정조 사후에도 이들이 홍봉한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다. 사도세자의 추숭에 대해 당시 세손이던 정조와 사석에서 홍봉한이 나눈 이야기를 김귀주가 영조에게 고자질해서 홍봉한을 역적으로 몰기도 했었다.

정조의 등극[편집]

1776년에 영조가 83세에 서거하고, 대리청정하던 세손 이산이 25세의 젊은 나이에 등극하니, 곧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장헌(莊獻)'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어머니 혜빈 홍씨 역시 '혜경궁(惠慶宮)'으로 궁호가 높아졌다. 당시 왕실에서 혜경궁 홍씨가 제일 연장자였으나, 서열상 10살 아래인 정순왕후가 대비의 위치를 차지하여 왕실 서열상 제2위의 위치에 있었다.

1795년 그녀가 회갑을 맞는 해에, 혜경궁 홍씨는 회고록인 《한중록》을 저술하였다. 한중록은 한번에 쓰인 게 아니라 십수년에 걸쳐 여러 번 쓰였으며 목적도, 내려준 사람도 각기 다른데 후대에 누군가가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집안의 명예회복이란 아들 정조가 죽은 후 벽파계의 공격에 의해 친동생이 사사당하고 아버지가 역적으로 다시 몰리자 그에 대해 변호한 것으로 가문의 원수였던 김귀주 계열, 벽파 계열에 대한 원한이 드러나 있으며 친동생의 죄목이나 아버지에 대한 공격등에 대해 정조 생전의 말이나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상세하게 거론하며 조목조목 변론하고 있다.

생애 후반[편집]

1800년 정조가 죽고, 정조의 아들이자 혜경궁 홍씨의 손자인 순조가 왕위에 올랐다. 1805년(순조 5년)부터는 담현증(痰昡症)을 앓아 오래 병석에 누웠다. 1815년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8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며 헌경빈(獻敬嬪)의 시호를 받았다. 이는 총명하고 예지(睿知)함을 헌(獻)이라 하고 밤낮으로 경계함을 일러 경(敬)이라 하였다 한다.[5] 순조 즉위 직후 혜경궁은 아들 정조의 약속을 이유로 친정에 대한 신원을 요구했고, 1814년(순조 14년) 그의 친정집은 신원, 복권된다. 또한 홍봉한의 죽음 직전에 그를 비난했던 정이환, 이심도 등의 처벌을 요구한다. 이심도는 사형에 처해진다.

1854년(철종 5년) 유정(裕靖)의 존호가 추가되었다. 1899년(광무 2년) 8월 3일에 경연특진관 서상조(徐相祖)의 상소로 장헌세자를 왕으로 추존할 것을 청하여 고종이 승인하여 장헌세자가 장종대왕으로 추존되자, 함께 헌경왕후로 추존되었고, 대한제국 성립 이후인 1903년에 장조가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로 격상되자 그녀 역시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로 격상되었다.

사후[편집]

능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융릉(隆陵)으로 남편인 장조와 함께 묻혀 있으며 인근에는 아들 정조와 며느리인 효의왕후의 능인 건릉(健陵)도 위치하여 있다.

평가[편집]

한중록은 청상과부가 된 그녀를 동정하는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편집증적인 영조의 사도세자 핍박과정을 상세히 적어놓은탓에 사도세자의 살인행각을 영조의 탓으로 사도세자를 미화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권력의 최상부에서 70년이상을 직접 보고 겪은 정사에서는 볼수없는 정치사의 이면을 폭로한 정보가 하나둘이 아니며 피상적으로 적혀있는 사건들의 사건전모를 파악할수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또한 조선후기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칠십년을 궁에서 살아온 경험들을 상세히 기술해 그 어떤 사료보다 당대 풍속을 상세히 그려볼수있게한다.

가족 관계[편집]

기타[편집]

정약용과 인척 관계[편집]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 정조의 다른 최측근인 홍국영은 정약용과 인척관계이기도 하다. 정약용의 장인 홍화보가 홍국영의 증조부뻘, 혜경궁에게는 할아버지뻘이 된다.

홍이상의 둘째 아들 홍영(1584년생)과 넷째 홍탁(1597년생)은 13년 나이차였고, 홍영의 증손자 홍중기(홍만용의 아들)와 홍탁의 손자 홍만기가 동갑이었고, 홍탁의 손자 홍만기는 40세가 다된 늦은 나이에 아들 홍중후를 봤다. 홍중후는 1687년생으로 8촌인 홍중해(홍국영의 고조부), 홍중기(혜경궁 홍씨의 증조부)와는 29세와 38세의 나이차이가 난다. 따라서 같은 항렬임에도 나이차가 많이 나게 되었다.

헌경왕후가 등장하는 작품[편집]

소설[편집]

드라마[편집]

영화[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1816 병자년 / 청 가경 21년) 1월 19일(기해) 1번째기사, "혜경궁 시책문"
  2. 영조실록. “영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5월 22일(을묘) 2번째 기사”. 조선왕조실록. 
  3. 영조실록. “영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윤5월 13일(을묘) 2번째 기사”. 조선왕조실록. 
  4. 영조실록. “영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윤5월 21일(을묘) 2번째 기사”. 조선왕조실록. 
  5. 순조실록 18권, 순조 15년(1815 을해년 / 청 가경 20년) 12월 25일(을해) 2번째기사, "빈청에서 혜경궁의 시호를 다시 의논하여 올리다"
  6. 혜경궁 홍씨 처소의 궁녀 출신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정순왕후
(효순왕후)
조선 역대 왕후
(추존)
후 임
효의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