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빈 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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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빈 민씨(靜嬪 閔氏, 1567년 ~ 1626년)은 선조의 후궁으로 본관은 여흥이다.

생애[편집]

강화 도호부사 민사준(閔士俊)의 딸로 성종의 사위인 여천위(驪川尉) 민자방의 증손녀이다.[1] 1580년(선조 13년) 음력 5월 26일 종2품 숙의(淑儀)로 정식 간택되어 입궁하였다.[2] 이때 간원이 민씨의 출신이 성종의 외손 집안이니 선발에서 제외하라고 간하였지만 선조가 윤허하지 않았다.[3] 이때 홍여겸(洪汝謙)의 딸(훗날의 정빈 홍씨), 정순희(鄭純禧)의 딸과 함께 숙의가 되어 입궁하였으며 민씨는 수진방(水眞坊)에 있는 궁으로 옮겨졌다.[4] 이후 소의, 귀인을 거쳐 정1품 빈(嬪)에 봉해졌다. 선조와의 사이에서 인성군 외에 딸 셋과 아들 둘을 낳았다. 인성군은 1624년 역모에 연루되어 유배되었고 1626년 정빈 민씨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인조는 인성군이 민씨를 만날 수 있도록 풀어주었으나[5] 민씨는 인성군이 한성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다.[6]

무덤[편집]

경기도 의정부시의 천보산에 정빈 민씨가 묻혀 있고 아들 인성군, 손자 해원군, 증손자 화릉군ㆍ화창군ㆍ화춘군도 묻혀있다.

가족관계[편집]

각주[편집]

  1. 《미수기언》 기언별집 구묘문(丘墓文)
  2. 《조선왕조실록》 선조 13년(1580 경진 / 명 만력(萬曆) 8년) 5월 26일(갑오) 1번째기사
  3. 《조선왕조실록》 선조 14권, 13년(1580 경진 / 명 만력(萬曆) 8년) 5월 27일(을미) 1번째기사
  4. 《조선왕조실록》 선조 14권, 13년(1580 경진 / 명 만력(萬曆) 8년) 5월 26일(갑오) 2번째기사
  5. 《조선왕조실록》 인조 14권, 4년(1626 병인 / 명 천계(天啓) 6년) 11월 1일(경오) 2번째기사
  6. 《국역 국조인물고》 권5 국척(國戚) 이공의 묘지(墓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