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빈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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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 신씨
信嬪 辛氏
지위
조선 태종의 후궁
이름
별호 신녕옹주(信寧翁主)
신녕궁주(愼寧宮主)
신상정보
출생일 1377년
사망일 1435년 음력 2월 2일
매장지 신빈신씨묘역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로223번안길 7
부친 신영귀 (辛永貴)
배우자 태종
자녀 2남 7녀
함녕군, 온녕군
정신옹주, 정정옹주, 숙정옹주, 숙녕옹주
소신옹주, 소숙옹주, 숙경옹주

신빈 신씨(信嬪 辛氏, 1377년 ~ 1435년 2월 2일)는 조선 태종의 후궁이다. 신녕옹주(信寧翁主) 또는 신녕궁주(愼寧宮主)라고도 한다.

생애[편집]

본관은 영월이며 검교 공조참의 신영귀(辛永貴)의 딸로, 본래는 원경왕후 민씨의 나인이었으나 1402년(태종 2년) 함녕군(諴寧君) 인(裀)을 낳고, 1414년(태종 14년) 1월 13일 그 아들 인(裀)이 정윤(正尹)으로 봉해짐과 동시에 신녕옹주(信寧翁主)가 되었다.[1]

원경왕후 사후에는 내명부를 총괄하며 내명부 상급권한을 누렸고 많은 일을 하였다.[2] 일례로 탄핵을 당한 신효창(申孝昌)이 벌을 받기를 두려워하며 당시 태종이 가장 총애하던 신녕옹주에게 노비를 뇌물로 준 일도 있었다.[3]

1422년(세종 4년) 태종이 병으로 누워있을 때 간호를 하여 신녕궁주(愼寧宮主)로 봉해졌고[4], 태종이 죽은 후에 태종의 또다른 후궁인 의빈 권씨와 함께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아침 저녁으로 불법(佛法)을 행하였는데, 세종이 이를 금하여도 듣지 않았다.[5]

1423년(세종 5년), 신씨가 태종의 복을 빌고자 하여 세종은 문소전(文昭殿)의 불당(佛堂)에 금으로 불경을 쓰게 하였다.

1435년(세종 17년) 사망하였는데 세종은 그녀가 서모였지만 국모에 준하는 예우를 해주었다. 상장을 갖추고 친히 군신을 거느려 예로써 조문하였으며 수의도 하사하였다.[6]

1872년(고종 9년) 고종대에 정1품 신빈(信嬪)으로 추증되었다.

능원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산 13번지에 있다. 2001년 9월 18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 신영귀(辛永貴)
    • 남편 : 태종(太宗, 1367 ~ 1422)
      • 장남 : 함녕군(諴寧君, 1402 ~ 1467) 이인(李裀)
        • 부인 : 전주군부인 최씨(全州郡夫人 崔氏) - 좌의정(左議政) 최사강(崔士康)의 딸
      • 차남 : 온녕군(溫寧君, 1407 ~ 1454) 이정(李裎)
        • 부인 : 익산군부인 박씨(益山郡夫人 朴氏) - 박안명(朴安命)의 딸
      • 장녀 : 정신옹주(貞信翁主, ? ~ 1452)
        • 사위 : 영평군(鈴平君) 윤계동(尹季童)
      • 차녀 : 정정옹주(貞靜翁主, 1410 ~ 1456)
        • 사위 : 한원군(漢原君) 조선(趙璿)
      • 삼녀 : 숙정옹주(淑貞翁主, 생몰년 미상)
        • 사위 : 일성군(日城君) 정효전(鄭孝全)
      • 사녀 : 숙녕옹주(淑寧翁主, 생몰년 미상)
        • 사위 : 파성군(坡城君) 윤우(尹愚)
      • 오녀 : 소신옹주(昭信翁主, ? ~ 1437)
        • 사위 : 유천위(柔川尉) 변효순(邊孝順)
      • 육녀 : 소숙옹주(昭淑翁主, ? ~ 1456)
        • 사위 : 해평위(海平尉) 윤연명(尹延命)
      • 칠녀 : 숙경옹주(淑慶翁主, 1420 ~ 1494)
        • 사위 : 파평군(坡平君) 윤암(尹巖)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태종실록》 27권, 태종 14년(1414년) 1월 13일(무자)
  2. 세종실록》 16권, 세종 4년(1422년) 4월 4일(경인)
  3. 세종실록》 2권, 세종 즉위년(1418년) 11월 13일(기미)
  4. 세종실록》 15권, 세종 4년(1422년) 2월 20일(정미)
  5. 세종실록》 16권, 세종 4년(1422년 명 영락(永樂) 20년) 5월 20일(병자)
    의빈 권씨 등이 비구니가 되다
    의빈 권씨와 신녕궁주 신씨가 임금에게 계하지 아니하고,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 후궁들이 서로 경쟁하여 머리를 깎고 염불하는 기구를 준비하여, 아침 저녁으로 불법을 행하였는데, 임금이 금하여도 되지 아니하였다.
  6. 세종실록》 67권, 세종 17년(1435년 명 선덕(宣德) 10년) 2월 2일(갑진)
    신녕궁주 신씨의 졸기
    신녕궁주(愼寧宮主) 신씨가 졸하였다. 태종이 총애하여 함녕군(諴寧君) 이인(李䄄) · 온녕군(溫寧君) 이정(李䄇)과 일곱 옹주를 낳았다. 처음 옹주에 봉작되었다가 뒤에 궁주로 작위를 높였는데, 졸함에 이르러 조상(弔喪)과 치제(致祭)를 내리고 관에서 장사(葬事)를 다스렸으며, 특히 염(斂)에 쓸 의복을 하사하였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