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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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옹주
옹주
신상정보
출생일 1481년
출생지 조선
사망일 1549년
왕조 조선 왕조
부친 성종
모친 귀인 영월 엄씨
배우자 청령위 한경침(淸寧尉 韓景琛)

공신옹주(恭愼翁主, 1481년 ~ 1549년)는 조선의 왕족으로 제9대 임금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5)의 서3녀이며, 한명회(韓明澮, 1415~1487)의 손자며느리이다.

생애[편집]

소용 엄씨(貴人 嚴氏, ? ~1504)의 소생으로, 14세에 한명회의 손자이자 낭성군(琅城君) 양호공(襄胡公) 한보(韓堡)의 아들인 순의대부(順義大夫) 청령위(淸寧尉) 한경침(韓景琛)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한경침은 그녀가 18세 되던 해에 사망하였으며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이후 그녀는 사망할 때까지 수절하였다. 이복오빠인 연산군폐비 윤씨가 궁에서 폐출되어 사사당한 일의 배후를 소용 엄씨로 보아 그녀를 죽이고 공신옹주 또한 폐서인하여 아산현에 위리안치시켰다. 옹주는 남편의 신위를 유배지에 가져가서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지내고 무엇이든 신위에 먼저 천신한 뒤에 입에 대었고, 아산현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다. 중종반정 이후 사면되었으며, 후에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중종은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곡식을 내려주었다. 또한 옹주의 절행을 《삼강행실속록》(三綱行實續錄)에 추가하여 싣도록 하였다. 말년에 외가인 영월 엄씨 가문과 남편인 한경침의 제사를 위한 후사를 세웠으며, 평생을 수절하다 69세로 사망하였다.

2006년 ~ 2010년 경기 남양주시 벌내지구에서 행해진 발굴조사 결과 회곽을 쓴 그녀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5장으로 이루어진 백자묘지명에 의하면 그녀는 성화 신축(1481)년에 태어나서 가정 기유(1549)년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가족 관계[편집]

친정 전주 이씨(全州 李氏)


시가 청주 한씨(淸州 韓氏)

  • 시아버지 : 한보(韓堡)
    • 부마 : 청령위 한경침(淸寧尉 韓景琛, 1482~ ?)

참고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