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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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옹주
孝靜翁主
옹주(翁主)
별칭
이순환 (李順環)[출처 필요]
신상정보
출생일 1520년
출생지 조선 한성부 숙원 후궁전
사망일 1544년 2월 (25세)
사망지 조선 한성부 순원위 사저
왕조 조선
가문 전주 이씨
배우자 순원위 조의정(淳原尉 趙義貞)
자녀 조천계(아들)

효정옹주(孝靜翁主, 1520년 ~ 1544년 2월)는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숙원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생애[편집]

중종숙원 이씨의 차녀로, 1520년 태어났다. 동복 언니로 정순옹주가 있다.

효정옹주는 순원위(淳原尉) 조의정(趙義貞)에게 하가하였는데, 조의정은 첩을 두어서는 안되는 부마의 규율을 깨고 첩을 두어 여러 차례 중종의 꾸지람을 들었다.[1] 그때마다 옹주는 투기하지 않고 남편을 보호하였는데, 조의정은 옹주의 몸종인 풍가이를 첩으로 삼아 풍가이를 옹주처럼 대접하고 옹주를 몸종처럼 대우하는 등 박대하였다.[1] 중종은 남편을 탓하지 않는 딸이 답답해 "여자가 되어 투기도 할 줄 모르면 여자가 아니니라"며 나무라기도 했다.[2]

한편 옹주는 1544년 아이를 낳고 나흘 만에 죽었다. 중종은 사위 조의정이 옹주의 병세가 위독함에도 이를 늦게 알렸으며, 궁에서 치료를 위해 보낸 의원과 의녀를 집에 들이지도 않고 돌려보냈다며 조의정을 의금부로 보내 문초하게 하였다.[1] 조의정은 옹주와의 정의가 돈독했다고 주장했으나, 중종은 궁에서 데리고 온 보모와 시녀를 내보낸 일과, 옹주의 임종에 앞서 외할머니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일 등을 꾸짖었다.[3] 결국 조의정은 유배를 가게 되었고, 조의정의 첩이자 과거 효정옹주의 여종이었던 풍가이는 장 백대를 맞고 풀려났는데, 숙원 이씨의 여동생으로 효정옹주의 이모인 상궁 은대가 내수사의 종들을 시켜 풍가이를 잡아가두고 매를 때려 죽게 만들었다. 중종은 처음에는 은대를 처벌하려 하지 않았으나 조정 대신들의 압박에 못 이겨 은대를 대구로 귀양보냈다.[2]

가족 관계[편집]

  • 부 : 조선 11대 국왕 중종
  • 모 : 숙원 이씨
  • 시아버지 : 한양 조씨(漢陽 趙氏) 조침(趙琛)
  • 시어머니 : 예안 우씨(禮安禹氏)
    • 부마 : 한양 조씨(漢陽 趙氏) 순원위(淳原尉) 조의정(趙義貞)
      • 장남 : 조천계(趙天啓)

각주[편집]

  1. 《중종실록》 39년(1544년) 2월 19일 5번째 기사
  2. 최향미, 《조선 공주의 사생활》, 북성재, 2011, ISBN 9788992162357
  3. 《중종실록》 39년(1544년) 2월 21일 2번째 기사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