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숙옹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혜숙옹주
惠淑翁主
지위
조선 성종의 옹주
이름
수란(秀蘭 · 壽蘭)
신상정보
출생일 1478년 4월 26일 (음력)
사망일 미상 (1507년 이후)
능묘 신항 · 혜숙옹주묘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379-7
부친 성종
모친 숙의 홍씨
배우자 고원위(高原尉) 신항(申沆)
자녀 신수경(申秀涇) (양자)

혜숙옹주(惠淑翁主, 1478년 음력 4월 26일 ~ ? )는 조선의 왕족이며 성종의 서장녀로 어머니는 숙의 홍씨이다.[1]

생애[편집]

1478년(성종 9년) 4월 26일, 성종(成宗)과 숙의 홍씨(淑儀 洪氏)의 장녀로 태어났다. 이름은 수란(秀蘭) 또는 수란(壽蘭)이며, 혜숙옹주의 태지석과 왕실족보인 《돈녕보첩》에 이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1490년(성종 21년) 4월 27일, 참판 신종호(申從濩)의 아들이자 신숙주한명회의 증손자인 고원위(高原尉) 신항(申沆)에게 출가하였다.[1]

신항은 세종의 10남인 의창군(義昌君)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혼인과 함께 70구의 노비와 전지 10결을 하사받았다.[2] 성종은 혜숙옹주를 신항에게 시집보내면서 시아버지 되는 신종호에게 옹주의 일을 따로 당부하였다.

 

우승지(右承旨) 신종호(申從濩)에게 전교하기를,

“옹주가 하가한 후에 시부모님을 뵙는 예(禮)가 있는데,
예전의 성현(聖賢)이 예를 만들 때 어찌 의도가 없었겠는가?
가도(家道)는 마땅히 근엄하게 할 바이다.
옹주가 궁궐 안에서 생장(生長)하여 더러 귀한 것을 믿고 교만한 폐단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어렸을 때부터 예를 알아야 하니, 습관이 몸에 배어 성품이 된 후에야
부도(婦道)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경(卿)은 존귀(尊貴)하게 대우하여 그 예를 폐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장차 혜숙옹주(惠淑翁主)를 고원위(高原尉) 신항(申沆)에게 하가시키려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전교가 있었는데,
신항은 바로 신종호(申從濩)의 아들이다.

— 《성종실록》 239권,
성종 21년(1490년 명 홍치(弘治) 3년) 4월 15일 (정유)


1506년(연산군 12년), 연산군은 연회를 열어 공주와 옹주, 종친의 처와 모든 왕후의 족친을 참석하게 하고, 핑계를 대어 불참하는 자는 그 남편에게 죄를 묻겠다고 어서(御書)를 내리고는, 다시 전교하여 공주, 옹주, 종친의 처와 왕후의 족친은 연회에 참석하게 하고 혜숙옹주만은 참석시키지 말라고 명하였다.[3]

1507년(중종 2년), 남편 신항과 사별하였다. 신항의 장례를 마치고 혜숙옹주는 신항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신도비(神道碑)를 세우고, 신용개(申用漑)에게 신항의 묘지명을 써줄 것을 부탁하였다.[4] 남편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모두 어려서 사망하였기에 신항의 동생인 신함의 아들 신수경을 양자로 삼았다.[4]

양자 신수경의 아들 신의(申檥)는 다시 그녀의 이복 남동생으로 정현왕후 소생인 중종의 딸 경현공주와 혼인하였다. 혜숙옹주와 경현공주는 친정 쪽으로는 이복 고모와 조카딸인데, 시가에서는 시조모와 손자며느리가 된다.

사후[편집]

언제 사망하였는지 알 수 없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내동면 송산으로, 현재의 의정부시 송산동에 있는 신숙주 묘역 근처에 남편 신항과 함께 매장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성종실록》 239권, 성종 21년(1490년 명 홍치(弘治) 3년) 4월 27일 (기유)
  2. 성종실록》 243권, 성종 21년(1490년 명 홍치(弘治) 3년) 8월 6일 (병술)
  3. 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2년(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8월 5일 (임자)
  4. 《국조인물고》 권6 국척(國戚) - 신항(申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