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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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성씨 (昌寧 成氏)
관향 경상남도 창녕군
시조 성인보 (成仁輔)
주요 집성촌 경상남도 창녕군 대지면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대양리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주요 인물 성여완, 성사달, 성석린, 성석용, 성석인, 성부, 성달생, 성염조, 성봉조, 성승, 성삼문, 성담수, 성준, 성건, 성현, 성희안, 성몽정, 성세창, 성수침, 성운, 성수경, 성혼, 성영, 성윤문, 성이성, 의빈 성씨, 성원묵, 성기운, 성무용, 성낙인, 성일환, 성장현, 성윤환, 성낙송, 성영훈, 성석제
인구(2015년) 182,377명
창녕 성씨 대종회

창녕 성씨(昌寧 成氏)는 경상남도 창녕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편집]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시조 성인보(成仁輔)는 고려시대 호장중윤(戶長中尹)을 역임했으며, 정월 초에 송경(松京)의 하례 모임 참석 중 병사하였다고 한다. 문하시중인 아들 성송국(成松國)이 시신을 업고 창녕으로 돌아오다가, 현풍현(玄風縣)에 이르러 현 창녕군 대지면(大地面) 모산리(牟山里) 맥산(麥山)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시조의 가계는 창녕의 호족으로 대대로 번성하여 창녕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물계서원에는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성삼문 등 창녕 성씨 조상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시조 성인보의 증손 성여완은 고려 말기의 충신으로 조선 건국 후 이태조가 내린 벼슬을 거부하고 경기도 포천에 은거하였다. 성여완의 아들은 조선 전기의 재상 성석린이고, 성석린의 형제인 성석용은 보문각대제학을 역임하였고, 사육신 성삼문과 생육신 성담수는 그의 증손이다, 성석연의 후손은 성봉조 성염조가 손자이고 성현 성준이 증손이다, 성세창 성세순이 고손이고, 수성침, 성수종 형제가 5대손이며 성혼 우계가 6대손이다.

분파[편집]

시조 성인보의 증손 성공필(成公弼), 성한필(成漢弼) 형제 대에 두 계통으로 갈라졌다. 성공필(成公弼)의 후손은 판서공파(判書公派)·독곡공파(獨谷公派)·회곡공파(檜谷公派)·상곡공파(桑谷公派)·낭장공파(郎將公派)·판사공파(判事公派)·시랑공파(侍郞公派)·정절공파(貞節公派)·사인공파(舍人公派)·좌랑공파(佐郞公派)의 10개 파로 분파되었고, 성한필(成漢弼)의 후손은 평리공파(評理公派)·검교공파(檢校公派)·지사공파(知事公派)의 3개 파로 분파되었다.

인물[편집]

항렬자[편집]

  • 대동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