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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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용(成石瑢, 1352년[1] ~ 1403년 4월 26일)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옥(自玉), 호는 회곡(檜谷)[2]이다. 성여완(成汝完)의 차남이자 성달생(成達生)·성개(成槪)의 아버지이다.
생애
[편집]1376년(우왕 2) 을과(乙科) 3위로 문과에 급제했다.[2]
공양왕(恭讓王)조에 대언(代言)으로 임명되었으며, 1390년(공양왕 2) 1월 왕이 처음으로 경연(經筵)을 열었을 때 이행(李行)·민개(閔開)·이사위(李士渭)와 함께 참찬관(叅贊官)으로 임명되었다.
12월 지신사(知申事), 이듬해 밀직사부사(密直司副使)를 거쳤다.[3]
1392년(공양왕 4) 이색(李穡)·우현보(禹玄寶)의 당이라는 이유로 형인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성석린(成石璘) 등과 함께 외지로 유배되었으나[4], 조선이 개국된 후 원종공신(原從功臣)의 녹권을 받았으며[5], 1398년(태조 7) 대사헌(大司憲)으로 임명되었다.[6]
이후 개성유후(開城留後)로 나갔으며, 1403년(태종 3) 졸했다.[5]
시호는 문숙(文肅)이다.[7]
가족 관계
[편집]- 증조 - 성공필(成公弼)[8] : 전객부령(典客副令), 증(贈) 판도판서(版圖判書)
- 부인 - 사온서령(司醞署令) 김성리(金成利)의 차녀[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