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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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낙순
洪樂純
조선국 의정부 좌의정
임기 1779년 ~ 1780년
군주 정조 이산
섭정 도승지 홍국영
신상정보
출생일 1723년
사망일 ?
본관 풍산
학력 1757년 정시문과 병과 급제
정당 무소속(골수 비당파 세력)
형제 홍낙춘(아우)
홍낙빈(아우)
배우자 경주 김씨 부인
친인척 홍국영(조카)
원빈 홍씨(조카딸)
정조(조카사위)
상계군(양외종손자)
별명 자(字)는 백효(伯孝)
아호(雅號)는 대릉(大陵)
시호(諡號)는 문헌(文憲)
종교 유교(성리학)

홍낙순(洪樂純, 1723년 ~ ?)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는 백효(伯孝), 는 대릉(大陵),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가족 관계[편집]

홍낙춘(洪樂春)과 홍낙빈(洪樂斌)의 형이며, 홍국영(洪國榮, 조선의 문신이자 세도정치가)과 원빈 홍씨(元嬪 洪氏, 조선 정조 후궁)의 큰아버지이다.

생애[편집]

관직 출사와 가문의 배경[편집]

홍낙순은 조선 영조 때인 175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역시 영조 임금 때인 177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그의 조카 홍국영은 훗날 정조 임금이 1776년부터 1800년까지 24년을 재위하는 동안에 1776년부터 1780년까지 4년간 세도 정치로써 실권하였으나, 정조 임금의 총애를 빙자하여 횡포를 일삼는 홍국영정조 임금의 명으로써 정계에서 축출된 이후로 정조 임금은 1780년부터 1800년 붕어할 때까지 나머지 20년간 친정을 한다.

그는 문과 급제 후 설서, 사서, 수찬을 지내고 진위 사진 어사를 거쳐 사진 어사, 영남 어사, 양진 어사를 지내고 교리, 부수찬, 문사 낭청, 부응교, 사간, 응교를 거쳐 의주부윤으로 특채되고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지내며 영조의 총애를 받았는데, 이후 우부승지를 지내고 충청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가 있다가 홍봉한, 홍인한신만, 김상로, 한익모, 윤동도, 김양택, 김상철, 김치인, 김익, 정존겸, 이재협, 신회, 이사관, 이창의, 이은, 이휘지 등 홍봉한 세력에 의해 바로 이조참의를 거쳐 동지의금부사에 제수되고 대사헌을 거쳐 성균관대사성을 지내다 공조판서로 비변사제조를 겸하고 공조판서, 호조판서, 대제학, 이조판서를 하다 의정부좌참찬을 거쳐 강화유수로 외직에 나가있다가 정조에 의해 우의정이 되고, 곧 좌의정까지 되었다.

홍국영의 큰아버지인 그는 정조 때인 1779년 좌의정에 제수되었으나, 이듬해 1780년 조카 홍국영이 조정에서 퇴출되면서 함께 파직에 처해졌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