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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 (육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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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工曹)는 고려조선의 행정기관이다. 고려 성종 이전에는 공관이라는 명칭을 쓰다가 고려 성종 이후에 공부라는 명칭을 썼다. 그러나 원 간섭기에 잠시 혁파되었다가 공조로 다시 환원되었지만 곧 다시 혁파되었다. 하지만 공민왕 때 다시 공부로 환원되었고 그 뒤에 전공사를 거쳐 다시 공부가 되었다가 또 다시 전공사로 환원되었다. 이후 공양왕 때 비로소 공조라는 명칭으로 바뀐다. 육조 가운데 국가의 토목공사, 공예품과 도량형의 제작, 산림과 농업 관리, 소택 관리, 교통업무 등을 관장하였다.

갑오개혁이 실시된 고종31년인 1894년에 공무아문과 농상아문으로 기능이 분리되었다가 이듬해에 농상공부로 합쳐졌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시절에는 농상공부가 조선시대 공조의 업무를 이어받았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노동국, 교통부, 선전부가 그 기능을 이어받았다. 해방 이후 미군정 체제에서는 미군정 광공국과 농상국, 교통국을 거쳐서 미군정 운수부, 농림부가 그 기능을 이어받았다. 또한 미군정 상공부 토목국은 토목부로 승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에서는 교통부, 상공부, 체신부, 농림부가 조선시대 공조의 기능을 이어받았다가, 오늘날에는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등 기관이 공조의 기관을 수행하고 있다.

고대 주나라에서 대사공(大司空)으로 불렀다하여 옛스럽게 별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동관(冬官), 수부(水府), 예작(例作), 수례(修例), 전공(典工)이라고도 한다. 공자가 53세에 대사공을 지내다가 이듬해에 대사구(현 법무부 장관)로 자리를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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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 청사는 경복궁 광화문 앞 세종대로의 서편에 있었으며,[1] 판서, 참판, 참의의 세 당상관이 근무하던 당상대청, 정랑과 좌랑이 근무하던 낭청대청 등의 건물이 존재하였다.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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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계 관직 정원 비고
정2품 판서 1명
종2품 참판 1명
정3품 참의 1명
정5품 정랑 3명
정6품 좌랑 3명

속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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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에서 관장하는 속아문(屬衙門, 하급 관청)은 아래와 같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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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재 주소 체계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의 세종문화회관 남쪽 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