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내수사(內需司)는 조선시대 왕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던 곳이다. 내수사는 내시들이 관장하였다. 또한 내수사는 정부기구가 아닌 사유재산을 관리하는 곳이었으므로 관료들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따라서 정확한 의미에서 통치기구는 아니며 단지 왕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는 사적 조직이다.

조선시대 왕의 사유재산은 태조의 개인재산에서 비롯되었다. 태조는 입신출세하기 이전부터 동북면에 막대한 재산을 가진 재력가였다. 고려말의 무공으로 여러 차례 공신에 책봉되면서 태조가 형성한 재산은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함경도 지역 토지의 3분의 1을 태조가 소유하고 있었다. 이외에 태조가 소유한 노비의 수도 적지 않았다.

태조가 조선을 창업하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 개인재산을 국유로 할지 아니면 사유로 할지 의론이 분분했다. 그러나 태종이 아버지 이성계의 재산을 사유로 하고 이를 왕실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했는데, 이것이 왕의 사유재산의 원천이 되었다. 이렇게 국가재정과 왕의 사유재산이 분리됨으로써 왕조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의 사치와 향락을 위하여 세금을 착취하는 일은 조선왕조에서는 원천적으로 일어날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재산은 주로 토지노비였는데 내수사 소속의 토지를 경작하는 농민들에게는 다른 곳에 비해 세금을 경감시키거나 소작료를 낮게 책정하는 등의 특혜를 베풀었다. 이에 따라 지주나 무거운 세금 관리의 착취를 피하기 위해 농민들이 너나없이 내수사 소속의 토지를 경작하려 했다. 이에서 나아가 아예 자신의 토지를 내수사에 헌납하고 그 대신 싼 세금을 내며 이런 저런 횡포에서 벗어나려 한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왕의 조세권이 사라진 현대의 다른 군주국가나 입헌군주제국가에서도 왕실 소유의 사적 재산은 존재하며 이를 통해 왕실이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왕실은 국가로부터 면세 혜택을 받은 적(1993년까지)은 있으나 세금으로 왕실이 운영되지는 않는다.(공개된 왕실재산만 3억 2000만 파운드) 태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도 세금을 통해 왕실이 운영되지 않는다.

일제에게 국권을 피탈당한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에 그 재산이 귀속되었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소송을 통해서 자신들의 선조가 일제에게 하사받은 토지를 찾는 상황에서도 조선왕조황실 후손들에 의한 내수사 관리하에 있던 재산 회복 움직임이나 소송은 없었다.

내수사는 오늘날의 경찰의 사직동팀, 신길동팀, 과거 안기부의 미림팀, 아니면 현재의 청와대 개인금고 관리팀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