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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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영(壯勇營)은 1785년 조선 정조가 만든 호위 군대이다. 대장 관직의 명칭은 장용사(壯勇使)이다.

역사[편집]

초기에는 장용위(壯勇衛)였으나 1788년 장용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500여명의 군사를 5대(隊)로 나눠 만들었다. 1793년에는 한양의 내영(內營)과 수원 화성의 외영(外營)으로 나눴다.[1] 다른 군영보다 규모가 컸다. 1795년 다른 군영의 병사들을 편입하여 5사(司) 23초(哨)의 큰 규모로 군대를 편제하였다. 왕권 강화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1800년 정조가 승하하고 왕권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당시 대왕대비였던 정순왕후에 의해 1802년 폐지되었다.

관직[편집]

  • 내영(內營) : 한성부 소재
    • 장용사(壯勇使) 1명[2]
    • 제조(提調) 1명
    • 종사관(從事官) 1명
    • 별장(別將) 1명
    • 파총(把摠)
    • 선기장(善騎將)
    • 초관(哨官)
  • 외영(外營) : 수원(水原) 소재
    • 장용외사(壯勇外使) 1명 : 수원유수 겸임

편성[편집]

  • 내영(內營)
    • 친병(親兵) 1사(司) 5초(哨)[3]
    • 향군(鄕軍) 4사 20초
  • 외영(外營)
    • 별효사(別驍士) 2초(哨)
    • 마병(馬兵) 4초
    • 속오군(束伍軍) 26초
    • 표하군(標下軍) 547명
    • 치중군(輜重軍) 200명
  • 독성산성(禿城山城)[4]
    • 장초(壯抄) 2초(哨)
    • 아병(牙兵) 1초
    • 둔장초(屯壯抄) 68명
    • 군수보(軍需保) 125명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정조실록》 1793년(정조 17년) 1월 26일 기사 "장용영이 내영과 외영의 새로 정한 절목을 올리다."
  2. 1793년 〈절목〉(節目, 법령)에서는 장용내사(壯勇內使)라고 정하고 장용대장(壯勇大將)라고 불렀다.
  3. 초(哨)는 조선시대 부대 단위이다. 오늘날의 중대급 규모이며, 약 100~120명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사(司)는 여러 개의 초로 편성한 상급 부대이다. 즉, 친병 1개 사는 5개 초(중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4. 예전 수원, 현재 오산에 있는 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