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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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감영(黃海監營)은 조선시대의 8개 도(道) 가운데 하나였던 황해도의 행정, 사법을 담당하던 종2품 관찰사가 근무하던 곳이다. 현재의 도청(道廳) 소재지 및 도청 건물에 해당한다.

연혁[편집]

  • 1395년(태조 4년) 6월, 풍해도(豊海道) 설치
  • 1417년(태종 17년) 12월, 황해도로 개편[1]
  • 1895년(고종 32년) 5월, 23부제 시행에 따라 감영 폐지 : 해주부(海州府)로 개편
  • 1896년(고종 33년) 8월, 13도제 시행에 따라 황해도 관찰사 소재지가 됨

감영 건물[편집]

해주(海州) 소재 황해감영에는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같은 건물이 있었다.

  • 선화당(宣化堂) : 종2품 관찰사의 업무 공간[2]
  • 내아(內衙) : 관찰사 가족의 생활 공간[3]
  • 백림정(栢林亭 : 선화당 북쪽에 있던 정자
  • 부용당(芙蓉堂) : 선화당 앞쪽 연못에 있던 건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68호)
  • 포정문(布政門) : 감영 정문[4]

감영 인근 시설[편집]

  • 해주부(海州府) : 해주 지역의 행정, 사법, 치안을 담당하는 종5품 해주판관(海州判官)의 관청 (감영 동북쪽, 해주읍성 북문 안쪽에 위치)
  • 객사(客舍) : 각종 의례를 행하거나 감영을 방문한 관원의 숙박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 (감영 동쪽에 인접)
  • 중영(中營) : 감영 소속 군사를 지휘하는 정3품 중군(中軍)의 근무 공간 (객사 동쪽에 위치)
  • 청단우헌(靑丹郵軒) : 청단역(靑丹驛) 찰방의 근무 공간 (해주읍성 동문 안쪽에 위치)
  • 순명문(順明門) : 해주읍성 남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72호)[5]

감영 건물 활용[편집]

1910년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후에도 선화당 건물 등이 황해도 도청으로 계속 활용되었으나, 1927년에 같은 위치에 청사를 신축하면서 선화당 등 주요 건물이 철거되었다. 부용당은 한국전쟁 시기에 소실되어 기단 부분만 남았었는데, 2003년에 복원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1871년 간행된 《해서읍지(海西邑誌)》의 기록에 따르면 1471년에 감영을 풍천에서 황주로 옮기면서 황해도가 되었다. 감영 소재지는 이후 여러 차례 황주와 해주를 오가다가 해주에 정착하였다.
  2. 수양관(首陽館)이라고 불렀다.
  3. 선화당 건물이었으나 내아로 용도가 전환되었다. 내아의 중심 건물이 된 예전 선화당(수양관) 건물을 그대로 수양관이라 지칭하기도 하였다.
  4. '해서포정문(海西布政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해서는 황해도를 뜻한다.
  5. 현재는 성문이 있던 터만 남아 있다. 성문은 일제강점기 때 도로를 확장 개설하는 과정에서 황해도청 정면 앞으로 석축기단 부분만 이전되어 정문으로 사용되었다가 나중에 모두 철거(또는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