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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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서는 수도(囚徒, 옥에 갇혀 있는 죄수)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관청이다. 재판 과정에 있는 미결수를 수감하는 감옥이며, 오늘날 형량이 확정되지 않은 형사 피의자를 구금하는 시설인 구치소에 해당한다. 재판이 열리는 형조와 전옥서를 오가는 과정에서 탈옥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기 때문에 전옥서를 형조 옆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1] 1894년 7월에 경무청감옥서로 개편된다.

연혁[편집]

  1. 1392년(태조 1년) 7월 28일: 전옥서의 관제를 정함. (정7품 관청)
  2. 1405년(태종 5년) 3월 1일: 전옥서를 형조의 속아문(소속 관청)으로 함.
  3. 1414년(태종 14년) 1월 18일: 전옥서의 영(令)을 승(丞)이라 하고, 승(丞)을 모두 부승(副丞)이라고 칭함.
  4. 1466년(세조 12년) 1월 15일: 전옥서의 승을 없애고 주부와 참봉을 각각 하나 씩 둠. (종6품 관청)
  5. 1742년(영조 18년) 10월 14일: 전옥서에 참봉 두 자리를 신설함.

청사[편집]

전옥서는 현재의 종로구 종각 서쪽 건너편 영풍문고 자리에 위치에 있었다. 담당 관원이 근무하는 청사, 하급 아전이 근무하는 사령청(使令廳), 죄인을 감금하는 옥사(獄舍) 등의 건물로 구성되었다.

관직[편집]

1392년 7월 28일~1414년 1월 18일
품계 관직명 인원
종7품 영(令) 2명
종8품 승(丞) 2명
없음 사리(司吏) 2명


1414년 1월 18일~1466년 1월 15일
품계 관직명 인원
종7품 승(丞) 2명
종8품 부승(副丞) 2명
없음 사리(司吏) 2명


1466년 1월 15일~1742년 10월 14일
품계 관직명 인원
종6품 주부(注簿) 1명
종9품 참봉(參奉) 1명
없음 사리(司吏) 2명


1742년 10월 14일 이후
품계 관직명 인원
종6품 주부(注簿) 1명
종9품 참봉(參奉) 3명
없음 사리(司吏) 2명

각주[편집]

  1. 전옥서와 형조(세종문화회관 북단에 위치)는 직선 거리로 약 600미터 떨어져 있었다. 도로상 거리는 약 800미터이다.

참고 문헌: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