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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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씨(慶州 金氏)
월성 김씨(月城 金氏)
경주 김씨의 종문
경주 김씨의 종문
관향 경상북도 경주시
시조 김알지(金閼智)
주요 중시조 경순왕(敬順王)
주요 집성촌 경상북도 경주시, 영천시, 상주시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도웅리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충청북도 보은군, 청주시
충청남도 보령시, 홍성군
전라북도 임실군, 남원시
울산광역시 울주군
함경남도 영흥군, 북청군
주요 인물 김원정, 김부식, 김돈중, 김인경, 김약선, 김균, 김맹성, 김홍익, 김홍욱, 김흥경, 김한신, 김귀주, 김관주, 김노경, 김도희, 김정희, 김홍집, 김정렬, 김근태, 김관진, 김문수, 김동철, 김동연, 김성태, 김학용, 김태흠
인구(2015년) 1,888,121명 (4위)

경주 김씨(慶州 金氏)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편집]

경주 김씨(慶州 金氏)는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전한다. 그 중 경순왕의 후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이다. 경순왕고려에 항복한 후 맞아들인 고려 태조의 딸들인 낙랑공주 왕씨와 ‘공주 왕씨’의 후손이라 추정되는 자손들이 분파를 형성하였다. 각종 병란(兵亂) 및 외적의 침입 등으로 인해 문헌(文獻)과 유적(遺蹟)이 멸실되어 상계(上系)를 자세히 상고(詳考)할 수 없다.

분파[편집]

경주(慶州)로 분적한 후손들 중 문헌(文獻)에 전하는 대표적 분파들은 다음과 같다.[1]

벽상공신내사령공파[편집]

  • 파조 김예겸(金禮謙) : 경순왕 후예로 고려 초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책록 되고 내사령(內史令)을 역임했다.[2]
  • 인물 : 김의진, 김인경

판도판서공파[편집]

  • 파조 김장유(金將有) : 경순왕 후예로 고려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했다. 6세손 '김정'(金淨)은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형조판서(刑曹判書)이며, 호당(湖糖)에 선정되고, 문간공(文簡公)의 시호를 받고 서원에 배향되었다.
  • 인물 : 김정

태사공파[편집]

평장사공파[편집]

장군공파[편집]

호장공파[편집]

  • 파조 김위영(金魏英) :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로 고려 초 주장(州長)을 역임했다.[7] 손자 김근(金覲)은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국자감(國子監) 좨주(祭酒)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였다. 김근의 아들 '김부일'(金富佾)은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태위(太尉)였으며, 시호는 문간공(文簡公)이다. '김부식'(金富軾)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이었고,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열공(文烈公)이다. 인종 묘실(仁宗廟室)에 배향되었다. '김부의'(金富儀)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사공(司空)이었으며, 시호는 문의공(文懿公)이다.
  • 인물 : 김근, 김부일, 김부식, 김부의, 김돈중, 김군수

상서공파[편집]

  • 파조 김여진(金麗珍) : 고려조에 상서(尙書)를 역임했다.[8]

목사공파[편집]

  • 파조 김소(金邵) : 목사(牧使)를 역임했다.[9] [10]

판서공파[편집]

  • 파조 김의(金義) : 고려말 공민왕(恭愍王) 때 밀직부사(密直副使), 동지사사(同知司事)등을 역임했다.[11]

판서공파[편집]

  • 파조 김덕재(金德載) : 조선 개국 보좌공신(補佐功臣)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하였다.[12]

직장공파[편집]

  • 파조 김수구(金壽龜) : 상의원 직장(尙衣院 直長)을 역임했다.[13]

상호공파군[편집]

  • 파조 김중약(金仲約) :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했다.[14]

본관[편집]

경주(慶州)는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기원전 57년 6촌(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를 형성하고 국호를 서라벌(徐羅伐)· 사로(斯盧)· 사라(斯羅)라 하고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65년(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의 시조 김알지(金閼智)가 탄생하여 국호를 계림(鷄林)으로 삼았다가 307년(기림왕 10)에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다.

935년(태조 18)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경주(慶州)로 개칭하고 경순왕의 식읍으로 주고, 그를 사심관으로 삼았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1008년(목종 11) 낙랑군(樂浪郡)이라 개칭하다가 1030년(현종 21) 삼경(三京)의 제도가 실시되자 동경(東京)을 설치하였으며 1202년(신종 5) 경주 야별초의 반란으로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219년(고종 6) 동경으로 환원되었다. 1308년(충렬왕 10) 계림부(鷄林府)로 개편하였다.

1413년(태종 13) 경주(慶州)로 개칭하고, 1415년 병마절도사영을 두었다가 1417년 울산(蔚山)으로 이전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속현인 자인현이 분리 독립하였다. 1895년(고종 32) 대구부 경주군(慶州郡)이 되었다가, 1955년 경주읍과 내동면 전역, 천북면과 내남면 일부가 통합되어 경주시(慶州市)로 승격되었다.

자녀 대두[편집]

《김은열 묘지명》[편집]

1784년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김은열 묘지석》을 우연히 발견하여 김노규(金魯奎)가 찬한 《김은열 묘지문》에 경순왕의 8자(子)들의 이름이 일(鎰)· 굉(鍠)· 명(鳴)· 은열(殷說)· 중석(重錫)· 건(鍵)· 선(鐥)· 종(鐘)이라 한다. 또 제2자 굉(鍠)과 제4자 은열(殷說)은 고려 태조의 외손인 낙랑공주 소생으로, 평장사(平章事), 유공지신(有功之臣), 특사장지(特賜葬地)하였다고 한다.

이듬해 1785년 김사목(金思穆)이 경주 김씨 족보를 수보(修普) 하면서 김노규가 찬한 묘지문을 바탕으로 《보국대안군 은열공 묘지명》을 추기(追記) 하였는데, 제2자 '굉'(鍠)을 '황'(湟)으로, 제3자 '명'(鳴)을 '명종'(鳴鍾)으로 개명하고, 제4자 은열(殷說)의 시호(諡號)를 '보국대안군'(輔國大安君)이라 작호(作號) 하였다. 이후부터 경주 김씨 일문 족보류에 경순왕 아들 이름 및 서차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묘지명》 의문[편집]

경주 김씨 일문 족보류에 등재된 《김은열 묘지명》은 찬(撰)한 사람도 없으며, 배위(配位) 및 생애 등도 누락되어 있고, 단지 형제 서차만 기술되어 있을 뿐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녀들 이름 또한 『고려사』 등의 문헌(文獻)은 물론이고, 그 어떤 금석문(金石文) 자료에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또 묘지문을 족보에 옮기는 과정에 김사목(金思穆)은 제2자 '김굉'(金鍠)을 '김황'(金湟)으로, 3자 '김명'(金鳴)을 '김명종'(金鳴鍾)으로 개명하고, 제4자 김은열(金殷說)의 시호를 '보국대안군'(輔國大安君)으로 작호(爵號)까지 하는 등 가필(加筆)을 심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신라경순왕전비문》[편집]

1814년 김계락(金啓洛)이 찬하여 세운 《신라경순왕전비》에 경순왕은 전비(前妃) 박씨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태자(太子) · 차자(次子) · 영분공(永芬公)이요, 1녀는 고려 경종의 왕비라 한다. 후비(后妃) 왕씨와의 사이에 5남 2녀를 두었는데 은열(殷說) · 석(錫) · 건(鍵) · 선(鐥) · 추(錘)요, 2녀는 이금서(李金書) · 황경(黃瓊)에게 출가하였다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전비(前妃) 박씨 소생의 왕자들을 태자(太子) · 차자(次子)라 하고, 영분공(永芬公)을 3자로 추가하였다. 《김은열 묘지명》에 나오는 1자 김일(金鎰) · 2자 김황(金湟) · 3자 김명종(金鳴鍾)등은 누락하고, 제5자 '김중석'(金重錫)을 '김석'(金錫), 제8자 '김종'(金鐘)을 '김추'(金錘)로 개명하고, 2녀를 추가하였다.

《김씨 분관록》[편집]

1887년 경주 김씨 후손 김창희(金昌熙)가 숭혜전(崇惠殿) 건립 때 각 김씨 문중에서 제출한 수단(收單)을 바탕으로 경주 김씨 분파(分派) 시말을 기록한 《김씨 분관록》(金氏 分貫錄)을 편찬하였는데, 여기에서는 그의 증조부 김사목(金思穆) 및 아버지 김정집(金鼎集)이 근기한 《김은열 묘지명》에 나오는 8자(子)들은 모두 배척하고, 경주 김씨 분파에 대해서 경순왕 후예 벽상공신 내사령 '김예겸'(金禮謙), 판도판서 '김장유'(金將有), 태사 '김인관'(金仁琯), 평장사 '김봉모'(金鳳毛), 장군 '김순웅'(金順雄), 호장 '김위영'(金魏英), 상서 '김여진'(金麗珍), 목사 '김소'(金邵), 판서 '김의'(金義), 판서 '김덕재'(金德載), 직장 '김수구'(金壽龜), 상호군 '김중약'(金仲約)등이 파조가 되어 분적 하였다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편집]

1908년 칙명(勅命)에 의해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도 경순왕 왕자들은 역사(歷史)에 이름이 실명(失名)으로 태자(太子)·별자(別子)·계자(季子)를 두었으며, 다른 아들인 김영분(金永芬)을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은열 묘지문》을 원용하여 8자(子)들을 소개 하면서 그들의 이름은 1자 김일(金鎰), 2자 김황(金湟. 평장사), 3자 김명종(金鳴鍾), 4자 김은열(金殷說. 대안군, 평장사), 5자 김석(金錫. 의성 김씨 시조), 6자 김건(金鍵. 강릉군), 7자 김선(金鐥. 언양 김씨 시조), 8자 김추(金錘. 일선군)라 하였다.

여기서도 경순왕 왕자(王子)들과 8자(子)들을 별도 인물로 소개하면서, 제3자 김명종(金鳴鍾)과 김영분(金永芬)은 별도 인물이라 하고, 제5자 '중석'(重錫)은 '석'(錫)으로 개명하고 의성 김씨 시조라 한다. 제6자 '건'(鍵)은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졌다고 하며, 제7자 '선'(鐥)은 언양 김씨 시조라 하며, 제8자 '종'(鐘)은 '추'(錘)로 개명하고 일선군(一善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현재[편집]

1785년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원용하여 경순왕의 제3자라 추기한 김영분(金永芬)의 이름이 김명종(金鳴鍾)이라 하며 그를 파조로 하는 '영분공파'(永芬公派)와 제4자라는 김은열(金殷說)을 파조로 하는 '대안군파'(大安君派) 및 조상에 대한 계통은 확실하지 않으나 경순왕 후예라 전하는 김장유(金將有)를 파조로 하는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헌강왕 후예라 전하는 김인관(金仁琯)을 파조로 하는 '태사공파'(太師公派), 원성왕(또는 경순왕) 후예라 전하는 김순웅(金順雄)을 파조로 하는 '장군공파'(將軍公派)[15], 김알지 후예 김위영(金魏英)을 파조로 하는 '호장공파'(戶長公派)[16]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또 다시 10여개의 지파(支派)로 분파되었다.

  • 영분공파 : 파조 김영분(金永芬)은 경순왕 3자라 추정하며, 이름은 실전(失傳)이다. 작금에 와서 이름이 김명종(金鳴鍾)이라 한다.[17] 그의 5세손 '김예겸'(金禮謙)이 고려 초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내사령(內史令)을 역임했다고 한다.
  • 대안군파 : 파조 김은열(金殷說)은 경순왕 4자로 공부시랑(工部侍郞)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대안군(大安君)에 봉해졌다고 한다.[18] 그의 6세손 '김봉모'(金鳳毛)가 고려조에 평장사(平章事) 정평공(靖平公)을 역임하였으며, 12세손 '김덕재'(金德載)는 조선 개국 보좌공신(補佐功臣),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했다고 한다.
  • 판도판서공파 : 파조 김장유(金有裔)는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했다.
  • 태사공파 : 파조 김인관(金仁琯)은 경순왕 후예로 고려 예종 때 검교태자태사(檢校太子太師)를 역임했다.[19]
  • 장군공파 : 파조 김순웅(金順雄)은 경순왕 후예로 고려 초 장군(將軍)을 역임했다.[20]
  • 호장공파 : 파조 김위영(金魏英)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 후예로 고려 초 호장(戶長)을 역임했다.[21]
  • 상서공파 : 파조 김여진(金麗珍)은 상서(尙書)를 역임했다.
  • 목사공파 : 파조 김소(金邵)는 목사(牧使)를 역임했다.

지파[편집]

  • 영분공파(永棼公派) : 파조 김명종(金鳴鍾)
    • 두계공파(杜溪公派) - 평장사 김인경의 현손 김충유[22]
    • 수은공파(樹隱公派) - 평장사 김인경의 현손 김충한
    • 시어사공파(侍御使公派) - 평장사 김인경의 현손 김충보
    • 참찬공파(參贊公派) - 평장사 김인경의 현손 김충익
    • 밀직공파(密直公派) - 평장사 김인경의 현손 김충원
    • 병판공파(兵判公派) - 평장사 김인경의 현손 김남보
    • 판삼사사공파(判三司事公派) - 평장사 김인경의 현손 김남분
    • 월성부원군파(月城府院君派) - 평장사 김인경의 6세손 김천서
    • 강릉공파(江陵公派) - 평장사 김인경의 5세손 김서
    • 부사공파(府使公派) - 평장사 김인경의 현손 김상한
    • 현감공파(縣監公派) - 평장사 김인경의 현손 김정심
  • 대안군파(大安君派) - 파조 김은열(金殷說)
    • 경파(京派)
    • 충선공파(忠宣公派) - 후손 김혼
    • 백촌공파(白村公派) - 후손 김문기
    • 병판공파(兵判公派) - 후손 김덕재
    • 참판공파(參判公派) - 후손 김광재
    • 차호공파(車湖公派)
    • 익화군파(益和君派) - 후손 김인찬
    • 부산파(釜山派)
    • 성천파(成川派)
    • 시랑공파(侍郞公派)
    • 시중공파(侍中公派)
    • 예조판서공파(禮曺判書公派)
    • 청원파(淸原派)
    • 평창파(平昌派)
    • 호정공파(昊亭公派)
  •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 파조 김장유(金將有)
    •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 판서공 김장유의 손자 김을식
    • 감사공파(監司公派) - 판서공 김장유의 손자 김을돈
    • 직장공파(直長公派) - 판서공 김장유의 손자 김을당
    • 공조판서공파(工曹判書公派) - 판서공 김장유의 손자 김을귀
    • 이조참의공파(吏曹參議公派) - 판서공 김장유의 손자 김원기
  • 태사공파(太師公派) - 파조 김인관(金仁琯)
    • 전서공파(典書公派) - 태사공 김인관의 9세손 김자정
    • 도사공파(都事公派) - 태사공 김인관의 후손 김초
    • 감사공파(監司公派) - 태사공 김인관의 후손 김초
    • 상촌공파(桑村公派) - 태사공 김인관의 9세손 김자수
    • 판관공파(判官公派) - 태사공 김인관의 후손 김영년
    • 좌랑공파(佐郞公派) - 태사공 김인관의 후손 김영원
    • 사승공파(司丞公派) - 태사공 김인관의 후손 김영전
    • 공평공파(恭平公派) - 태사공 김인관의 후손 김영유
    • 우재공파(愚齋公派) - 태사공 김인관의 10세손 김한
    • 송재공파(松齋公派) - 태사공 김인관의 11세손 김수량
  • 장군공파(將軍公派) - 파조 김순웅(金順雄)
    • 계림군파(雞林君派) -장군공 김순웅의 13세손 김균
    • 공호공파(恭胡公派) - 장군공 김순웅의 후손 김종순
    • 현령공파(縣令公派) - 장군공 김순웅의 13세손 김능
    • 연동파(蓮洞派) - 장군공 김순웅의 13세손 김의
    • 봉산파(鳳山派) - 장군공 김순웅의 13세손 김세보
    • 춘고공파(春皐公派) - 장군공 김순웅의 14세손 김순
  • 호장공파(戶長公派) - 파조 김위영(金魏英)
    • 태사공파(太射公派) - 호장 김위영의 손자 김부일(富佾)
    • 중서령공파(中書令公派) - 호장 김위영의 손자 김부식(富軾)
    • 사공공파(司空公派) - 호장 김위영의 손자 김부의(富儀)
  • 상서공파(尙書公派) - 파조 김여진(金麗珍)
  • 목사공파(牧使公派) - 파조 김소(金邵)

집성촌[편집]

항렬자[편집]

  • 장군공파 계림군파(파조로 1세)
  1. 《김씨분관록》, 《증보문헌비고》, 《조선씨족통보》 등
  2. 『고려묘지명집성』에 후손 김자류(金子鏐)는 경순왕 후예가 아닌 신라왕 후예라 한다.
  3. 일운(一云) 경순왕 후예라 한다.
  4. 《고려사》에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인 신라 종성이라 한다.
  5. 일운(一云) 경순왕 후예라 한다.
  6. 《고려사》에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인 원성왕 후예라 한다.
  7. 《고려사》 김부일(金富佾) 열전(列傳)에 그는 경주(慶州) 사람으로 그 선조는 신라(新羅)의 종성(宗姓)이었다. 고려 태조가 처음 경주를 설치할 때 김위영(金魏英)을 주장(州長)으로 삼았으니 곧 김부일의 증조이다.
  8. 경주 김씨 계림군파(鷄林君派) 갑자보에 의하면 파조 조선 개국공신 김균(金稛)의 9세손 김여진(金麗珍)이 지금의 경북 상주군 공검면에 세거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9. 공민왕 7년에 광록대부(光祿大夫)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역임한 문간공(文簡公) 청주이씨 이정(李挺)의 신도비문을 태종 3년(1403) 권근(權近)이 찬하였는데, 맏아들 형부낭중(刑部郞中) 유신(由信)의 둘째 사위가 대호군(大護軍) 김소(金邵)라는 기록이 보인다.
  10. 세종 7년(1425) 술잔치를 벌인 도총제 이순몽의 죄를 적용할 율을 올리면서 전 목사(牧使) 김소(金邵)의 이름이 보인다.
  11. 《고려사》(高麗史)에 고려에 귀화한 호인(胡人)으로 본명은 김야열가(金也列哥)이다.
  12. 함경도 정평(定平)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13. 안강 김씨(安康 金氏)로 분파하였다고 한다.
  14. 조선 정종의 아들 선성군(宣城君) 이무생(李茂生)의 빙부(聘父)이다.
  15. 「김지우 묘지명(金之祐 墓誌銘)」에는 신라 원성왕(元聖王) 후손이라 한다.
  16. 《고려사》 「김부일(金富佾) 열전(列傳)」에 그는 경주(慶州) 사람으로 그 선조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인 신라(新羅)의 종성(宗姓)이라 하였다. 고려 태조가 처음 [[경주]를 설치할 때 증조 김위영(金魏英)을 주장(州長)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17. 최근 들어 김영분(金永芬)은 신라 종실(宗室)로 대보공 김알지 후예라 한다.
  18. 일운(一云) 경순왕 제2자라 한다.
  19. 일운(一云) 헌강왕(憲康王) 7세손이라 한다.
  20. 《고려사》 「김지우 묘지명(金之祐 墓誌銘)」에는 신라 원성왕 후예라 한다.
  21. 《고려사》 김부일(金富佾) 열전(列傳)에 선조가 신라 대보공 후예인 신라 종성(宗姓)으로 고려 초 경주(慶州) 주장(州長) 김위영(金魏英)이 그의 증조라 한다.
  22. 김인경(金仁鏡)은 파조 김예겸의 6세손이며, 평장사 양신공(良愼公) 김의진(金義珍)의 4세손이다. 고려 명종(明宗) 때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시호는 정숙공(貞肅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