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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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金稛, ? ~ 1398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군호는 계림군(鷄林君),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360년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여 과거를 준비하다가 조준(趙浚)을 알게 되었는데, 이 덕분에 조준이 국정을 맡을 때 여러 번 천거되었고,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지냈다. 1392년 조준의 설득으로 7월 17일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태조를 추대한 공로로 개국 3등공신에 책록되고,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에 가자되고 익대개국공신(翊戴開國功臣) 공신호를 받았으며,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다. 벼슬이 보국숭록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에 이르렀다. 1398년 졸하였다. 사후 제숙(齊肅)의 시호가 내려졌다. 슬하에 김맹성(金孟誠)·김중성(金仲誠)·김계성(金季誠) 세자녀를 두었다.

김균선생묘》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에 있다. 묘역은 담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은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다. 묘 앞에는 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으며 좌우로 문인석 2쌍, 석양(石羊)과 망주석이 각 1쌍씩 배열되어 있다. 상석의 왼쪽에 묘비가 있으며, 묘역 앞쪽 약 80m 지점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비문은 송병선이 짓고 윤용구가 글을 써서 1905년에 건립한 것이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현재 묘역의 건립 시기는 18세기 후반으로 보이며, 묘비는 그 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87년 2월 12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할아버지 : 김기연(金起淵)
    • 아버지 : 김지윤(金智允)
    • 어머니 : 권현(權鉉)의 딸
      • 부인 : ?
        • 장남 : 김맹성(金孟誠)
          • 손자 : 없음
        • 차남 : 김중성(金仲誠)
          • 손자 : 김안민(金安民)
          • 손자 : 김신민(金新民)
          • 손자 : 김인민(金仁民)
        • 삼남 : 김계성(金季誠)
          • 손자 : 김종순(金從舜) - 판윤(判尹) 참호공(叅胡公) 청백리(淸白吏) 선정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