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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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趙狷, 1351 ~ 1425)은 고려의 충신이다. 호는 송산(松山), 본관은 평양(平壤).

어려서 승려가 되어 여러 의 주지를 지냈다. 그 후 환속하여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안렴사를 지냈다. 형 조준이 이성계를 도와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과천청계산에 숨었다. 태조 이성계가 벼슬을 내리고 여러 번 불렀으나 나오지 않고 양주의 송산에 숨어 여생을 마쳤다. 죽을 때 자손들에게 묘비에 고려 때의 벼슬만 적고, 조선 때의 훈명은 적지 말라 하였다. 그러나 자식들은 후환이 두려워 개국이등공신 조견지묘(開國二等功臣 趙狷之墓)라고 묘비를 세웠으나, 그날 밤 벼락이 쳐 '開國二等功臣' 이라는 글자만 부서졌다고 한다.

가족[편집]

  • 부 : 조덕유(趙德裕)이다.
  • 모 : 오의(吳懿)의 딸

묘소[편집]

송산 조견 선생 묘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있다. 2001년 2월 20일 성남시의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었다.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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