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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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김씨 (全州 金氏)
관향 전라북도 전주시
시조 김봉모(金鳳毛)
주요 중시조 김경(金敬), 김달혼(金達渾)
주요 집성촌 량강도 김형직군
자강도 초산군
평안북도 녕변군
평안남도 평원군
평양직할시
함경남도 금야군·고원군
강원도 문천시
주요 인물 김태서, 김약선, 김경손, 김동원, 김동인, 김연준, 김재순, 김광섭, 김규동,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김영수
인구(2015년) 56,989명

전주 김씨(全州 金氏)는 전라북도 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김봉모(金鳳毛)는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조에서 동북면병마사·추밀원부사·문하시랑평장사·태자태부를 지내고 완산군(完山君)·정평공(靖平公)에 봉해졌다.

역사[편집]

시조 김봉모신라 56대 경순왕(敬順王)의 후예로 그 시원은 신라 김씨 시조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부터 시작하여 내물왕(奈勿王), 지증왕(智證王), 원성왕(元聖王), 신무왕(神武王), 문성왕(文聖王), 경순왕(敬順王)으로 아어져 내려와 왕을 6명이나 배출하였다.

일설에 시조 김봉모경순왕 넷째아들이라는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이라 하며, 김은열은 시랑(侍郎)을 거쳐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보국대안군(輔國大安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김은열(金殷說)에 대해 정사는 물론 금석문등 어디에도 기록이 없으며, 다만 조선 후기 들어 묘지명만 발견되었다고 하여 그 존재를 추정할 뿐이다. 또한 묘지명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인물[편집]

고려[편집]

시조 김봉모의 아들 김태서(金台瑞)는 한림학사(翰林學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상장군(上將軍),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수태보(守太保),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으며 전주군(全州君)에 봉해졌다. 사후 문장공(文莊公)의 시호가 추증되었다.

김태서(金台瑞)는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김약선(金若先)은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냈으며,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에 봉해졌다. 또한 당시 무신정권의 수장 진양후(晉陽侯) 최우(崔瑀)의 사위이자 고려 원종의 장인이었다. 사후 장익공(莊翼公)에 추증되었다.

차남 김기손(金起孫)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고, 사후 문익공(文翼公)에 추증되었다.

삼남 김경손(金慶孫)은 항몽(抗蒙) 당시 큰 공을 세웠고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으며, 정주분도장군(靜州分道將軍)을 거쳐 대장군(大將軍), 전라도지휘사(全羅道指揮使),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당시 집권세력인 최항(崔沆)의 시기를 받아 백령도에 유배되었다가 바다에 수장되었다. 사후 문간공(文簡公)에 추증되었다.

김약선의 아들 미(敉)는 사공(司空)에 올랐다. 김약선의 딸은 고려 원종과 혼인하였고, 충렬왕을 낳았다. 살아 생전 태자비였으나 사후 1262년 정순왕후로 추존된다. 또한 그녀의 아들이 1274년 드디어 왕위에 오르니 바로 충렬왕으로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정순왕후는 태후로 추존되니 시호를 순경태후(順敬太后)라 하였다.

김기손의 자녀들도 상장군, 좌승선(左承宣), 상서(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김경손의 자손 혼(琿)은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로 충선공(忠善公)에 추증되었다.

김태서(金台瑞)의 묘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모악산)에 위치해 있는데, 육관 손석우라는 사람이 김일성 사망 1년전 '터'라는 책에서 김태서의 묘에 대해서 이 묘는 천문을 열고, 지축을 깨는 절대 권력의 묘자리라며 김일성 사망시기를 예언한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조선[편집]

조선시대에도 전주 김씨는 명문가의 명맥을 유지하였는데, 김경(金敬)은 윤필상 경원부 도원수 휘하에서 여진정벌에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자신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함경도로 이주하였고, 입북중시조(入北中始祖)로 받들어지고 있다. 김니(金柅)는 임진왜란 당시 김응서와 함께 왜군을 격퇴하였으며, 주사대장(舟師大將)과 공조참의(工曹參議)를 거쳐 병조참판(兵曹參判)과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또한 선무공신(宣武功臣)과 청백리에 선정되었으며, 1612년에 천추사(天秋使)로 파견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김달혼(金達渾)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의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섰다. 김치원(金致遠)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아 공을 세웠으며,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기여하였다. 이후 대북파의 모함으로 삭탈관직을 당했으나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고 서흥부사(瑞興府使)에 이르렀다.

근 · 현대[편집]

근·현대에 와서는 북로군정서군에서 활약하였으며 1924년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의 순시선을 저격한 독립운동가 김관보(金官寶), 소설가 김동인(金東仁), 대한민국 제헌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동원(金東元), 시인 김광섭(金珖燮), 한양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 김연준(金連俊),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金在淳), 시인 김규동(金奎東) 등이 있다.

분적[편집]

전주 김씨에서 직계 분적된 본관으로는 완산 김씨(完山 金氏)가 있다.

집성촌[편집]

전주 김씨의 주요 집성촌은 평남 평원군, 평남 영원군, 평남 평양시, 평북 희천군, 평북 벽동군, 평북 자성군, 평북 강계군, 평북 후창군, 함남 함주군, 함남 정평군, 함남 영흥군, 함남 고원군, 함남 안변군, 함남 이원군, 함남 신흥군, 함북 경성군, 함북 명천군 , 함북 무산군 , 함북 경흥군, 경북 의성군 등으로 주로 이북지방에 세거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때 평안도와 함경도로 대거 이주가 이뤄졌다.

인구[편집]

2000년 통계조사를 기준으로 18,126가구, 총 57,979명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울 18,194명, 부산 3,619명, 대구 1,554명, 인천 4,082명, 광주 369명, 대전 1,652명, 울산 717명, 경기 15,561명, 강원 3,457명, 충북 1,515명, 충남 1,662명, 전북 1,697명, 전남 693명, 경북 1,527명, 경남 1,410명, 제주 270명이다.

항렬표[편집]

전주김씨는 항렬자가 통일되지 않은 상태로 역사를 이어왔는데, 2004년에 전주김씨 대동보를 편찬하면서 대동보에 항렬자를 수록하였다. 향후 몇 세가 더 흘러야 비로소 통일된 항렬자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 전주김씨 대동보에 수록된 항렬자(시조를 1세로 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