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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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흥군
DPRK2006 Hambuk-Undok.PNG
현황
면적 940km²
총인구 89,244[1]명 (2008)
1개
6개
10개
군청
소재지 경흥읍

경흥군(慶興郡)은 함경북도 북동부에 있는 이다. 예전 이름인 은덕군(恩德郡)으로도 자주 불린다. 최근 이름을 은덕군에서 경흥군으로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2][3][4]

1945년 해방 당시의 경흥군 지역은 현재 대부분 라선특별시에 속하고, 현재의 경흥군은 해방 당시 경흥군 아오지읍을 중심으로 경원군 유덕면·아산면 및 종성군 화방면을 합친 지역이다. 현재의 경흥읍(경흥군 인민위원회 소재지)은 해방 당시 아오지읍의 읍사무소 소재지였다.

지리[편집]

남쪽은 동해이며 북쪽의 두만강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둥베이 지역과 접하는 국경 지대이다. 두만강의 맞은편은 중화인민공화국 지린 성 훈춘 시가 있고, 서쪽으로는 회령시가 있다. 두만강을 따라서 북쪽으로 경원군, 남쪽으로 라선특별시가 있다.

남서쪽 일부 지대를 제외하면 낮은 구릉 지대로 이루어져 평야는 거의 없다. 송진산(1,146m)이 가장 높은 산이다. 전체 군 면적의 약 80%가 삼림 지대이며 경작지는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역사[편집]

1888년에 조로륙로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대러시아 무역의 통상지로서 이듬해인 1889년 경흥부가 개설되어 러시아의 조차지가 설치되었다.

일제 치하에 있던 1930년대 이후, 아오지 탄광을 시작으로 하는 광공업 개발이 진행되었다. 일본질소비료의 아오지 공장이 만들어져 인조석유의 제조가 시도되었다. 아오지에는 기술자와 그 가족 등 일본인 거류자도 많았다. 북조선의 통치하에서도 광업·화학공업의 거점이 되고 있다.

  • 고려시대 - 공주로 불렸다.
  • 1435년 - 공성현이 설치되었다.
  • 1437년 - 경흥군으로 개칭하였다.
  • 1443년 - 경흥도호부로 승격하였다.
  • 1889년 - 조로륙로통상조약에 의해 경흥이 개시되었다.
  • 1895년 - 경성부 경흥군이 되었다(23부제).
  • 1931년 - 웅기면이 웅기읍으로 승격하였다.
  • 1934년 - 신안면이 나진읍으로 승격하였다.
  • 1936년 - 나진읍이 나진부로 승격, 분리되었다.
  • 1940년 11월 1일 - 상하면이 아오지읍으로 승격하였다.[5]
  • 1947년 11월 - 종성군 화방면, 경원군 유덕면을 경흥군에 편입하였다.
  • 1952년 12월 - 웅기읍·노서면을 신설된 웅기군으로 분리하고, 풍해면을 라진시로 이관하였으며, 경원군에서 아산면을 편입하여 군역을 재편성하였다.(1읍 17리)
  • 1977년 9월 - 경흥군을 은덕군으로 개칭하였다. 은덕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은덕으로 나날이 변모해 가는 고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 2010년 - 은덕군을 경흥군으로 개칭하였다.

산업[편집]

군의 주요 산업은 석탄 공업이다. 유명한 아오지 탄광이 있는 곳이다. 일제 시대에 허술한 노동 안전과 동발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을 강행하여 갱이 무너지는 사고가 빈발하였다.

밭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업과 목축업도 행해진다. 아오지화학공장, 7.7화학공장, 1.20 군수공장도 경흥군에 있다.

교통[편집]

철도는 함북선회암선이 지난다.

하위 행정구역[편집]

  • 은덕읍
  • 룡연노동자구
  • 명룡노동자구
  • 오봉노동자구
  • 태양리
  • 학송리
  • 송학리
  • 신아산리
  • 장평리
  • 귀락리
  • 송산리
  • 명덕리
  • 안길리
  • 금송리
  • 록야리
  • 철주리

각주[편집]

  1. 조선중앙통계국,2008년 인구 조사,2009년.
  2. 북한지역정보넷,경흥군
  3. 조선중앙통계국,2008년 인구 조사 18쪽 시군구별 인구 참조.
  4. 유니프레이어닷컴,오늘의 통일기도
  5. 부령 제221호 (개정 1940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