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성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대한민국의 주요 성씨(KNSO, 2000)
  김(金)
  그 외

(金)씨는 성씨의 하나이다. 한국의 김(金)씨는 대부분 경주 김씨신라계와 김해 김씨가야계에서 유래한다. 여진족이나 일본에서 조선에 귀화하여 김씨 성을 받은 기록도 많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태고 때 소호가 금(金)씨였고, 한나라 때 한 무제흉노족에게 금(金)씨 성을 사성했다고도 한다. 한편 중국, 홍콩, 대만 등 중화권에서는 김(琻), 김(鍂)으로 발음되는 여러 다른 김씨가 존재하나, 대한민국에도 존재하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1] 김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이다.

발음 / 표기[편집]

한국어로 金의 일반적인 표기와 발음은 “금”이지만 김포(金浦), 김천(金泉)과 같은 일부 지명이나 성씨를 표기할 때는 “김”이라고 발음한다.

중국어로 금(金)을 , 광둥어로는 금(金)을 , 또는 으로 발음한다.

신라계 김씨[편집]

신화에 따르면 신라 김씨의 시조는 석탈해의 양자 김알지(金閼智)이다. 실제로는 법흥왕 때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증대되면서 대내외적으로 사용하였고, 636년(선덕여왕 5년)에 당나라에서 간행된 북제서에 진흥왕의 성을 김(金)으로 처음으로 기록하였다. 5세기 내물왕씨 세력이 사라지고 씨가 집권하였다. 삼국통일 이후 무열왕계인 문무왕의 직계 자손들이 왕위를 세습하였는데, 혜공왕무열왕계 중에서 문무왕의 직계혈통의 계보가 끊어졌으며, 사다함 후손이자 내물왕의 10세손인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하면서 신라 하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선덕왕이 후사없이 붕어하자 내물왕의 12대손 김경신이 유력한 왕위계승 후보인 김주원을 따돌리고 원성왕으로 즉위했다. 그 이후 경순왕까지 원성왕계가 왕이 되었으므로 현존 신라 김씨는 대부분 원성왕김경신의 후손이다.

신라계 김씨의 분화는 경순왕 이후로 판단된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조차도 자신을 신라계 김씨로 인식하였을 뿐, 본관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현재 김부식은 태종무열왕의 후손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신라삼성연원보에 따르면 경순왕의 후예라고 주장된다). 즉,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본관은 출신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후대에 내려오면서 본관의식이 생겨나고, 본관별 가계도가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일부 신라계 김씨에서 본관의 뿌리를 대보공 김알지나 무열왕, 신무왕 등으로 삼는 경우가 있지만, 계대를 정확하게 고증할 수는 없고 이는 후대에 자신의 본관 시조로 삼은 것일 뿐이다.[2]

  • 부령 김씨(부안 김씨)의 시조는 경순왕과 죽방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마의태자 김일(金鎰)이다. 고려에 손국(遜國)하려는 경순왕의 뜻에 반대하였으며, 신라가 망하자 금강산으로 입산하였다. 마의태자의 증손인 김경수(金景修)가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상서와 우복야를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김춘(金春)이 부령부원군(扶寧府院君)에 봉해져 관향을 부령으로 하였다. 후에 부령이 부안으로 변경된 이후에는 본관을 부안으로 개칭하였다.
  • 강릉 김씨는 명주 호족 김주원과 경순왕 아들 김건 계통이 있다. 후자의 경우 후강릉(後江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주원(金周元)은 김인문의 후손으로 전해졌으나 김인문은 당나라에서 병사하여 후손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강릉 김씨에서는 김문왕의 후손이라고 하고 있다. 김주원, 김순식의 후손은 씨가 되었다가 조선조에 씨로 복성하였다. 인물로는 김헌창, 김인존, 김시습 등이 있다.
  • 안동 김씨는 김숙승계를 구 안동 김씨, 고려 개국 공신 김선평계를 신 안동 김씨라고 한다. 두 본관은 동시대에 시작되었으나 2000년 인구통계에 구안동은 대략 50만명, 신안동은 대략 5만명으로 나타났다. 안동의 고호는 석릉(石陵)으로 고대에는 석릉 김씨라고도 하였다. 구안동 김씨의 시조 김숙승은 대안군 김은열의 후손으로 평장사를 지냈다. 인물로는 김시민(金時敏), 김자점(金自點), 김구(金九) 등이 있다. 신안동 김씨의 시조 김선평고려 개국 공신이다. 신안동 김씨는 안동의 호족으로 전할 뿐, 신라삼성연원보와 조선씨족통보에 구체적인 연원이 없다. 신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는 조선 개혁의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 조선이 몰락한 한 요인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물로는 조선김조순, 순원왕후, 김삿갓, 김좌진, 김옥균이 있다.
  • 전주 김씨 시조는 경순왕의 넷째아들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의 8세손이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낸 문장공(文莊公) 김태서이다. 주요인물로는 고려 원종의 장인이자 장익공(莊翼公)에 추시된 김약선, 대몽골항쟁과 이연년의 난 평정에 공을 세운 김경손, 문학가 김동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김일성, 대한민국 정치인 김재순, 교육자 김연준 등이 있다. 전주 김씨는 인구수가 적어서 이합집산 가능성이 없는 단일 신라 본관이다. 고려 고종 41년(1254)에 몽골경주에 침략한 이후 경주가 폐허가 되자 김태서가 식솔들을 거느리고 전주로 이거하였다. 이후 김태서는 완산군(完山君(전주군(全州君)))에 봉해졌고 후에 전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 광산 김씨의 시조는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3남인 김흥광(金興光)이다. 경주 김씨 대봉도, 조선씨족통보에 광산 김씨의 연원이 없다. 그래서 호남 지역에 기반을 두었던 세력들이 연합한 본관으로 추정하는 관점이 있다. 문중에서는 신라 왕자인 김흥광의 광산 도피설을 제시하고 있다. 인물로는 김장생, 김집 등이 있다.
  • 순천 김씨의 시조 김총(金摠)은 태봉의 인가별감(仁駕別監)으로 공을 세워 평양군(순천의 옛 지명)에 봉해졌다. 김총(金摠)은 경주 김씨 김알지의 후손으로 825년(신라 헌덕왕 17년)에 태어나 인가별감(引駕別監)으로 공을 세워 평양(현 순천)군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본관을 순천으로 하였다. 주요인물로는 조선 때에 6진을 개척한 절재 김종서와 인조반정을 통해 훈로(勳老)가 된 김류등이 있다.
  • 김녕 김씨는 김은열의 8세손 김시흥(金時興)이 시조이며, 본래 본관은 김해였는데 조선 고종때 왕명으로 김녕으로 개칭되었다. 인물로는 정치인 김영삼, 군인 김재규가 있다.
  • 청풍 김씨김대유(金大猷)가 시조이며, 인물로는 소설가 김유정(金裕貞)이 있다. 분파 청도 김씨김지대(金之岱)가 시조이며, 인물로는 김정호가 있다.

가야계 김씨[편집]

가야 김씨의 상징적 시조는 가야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김수로(金首露)이다. 석이정전(釋利貞傳)에 따르면 가야산의 하늘의 신(神)인 이비가(夷毗訶)에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명은 고령 대가야 시조 뇌질주일(惱室朱日)이고, 다른 한명은 김해 금관가야(金官伽倻) 시조 뇌질청예(惱窒靑裔)이다. 고성 소가야 시조는 김말로(金末露)이다. 5세기 금관 가야진한 사로국과 전쟁을 하였는데, 고구려의 공격으로 멸망하여 남해 해안 등으로 도피하였다가, 일부 세력이 6세기 신라에 투항하였다. 이어 대가야의 이뇌왕, 월광태자가 진흥왕에게 투항하여 가야 소국은 모두 신라에 병합되었다.

김해 김씨는 가야 수로계를 선김(先金), 신라계를 후김(後金)으로 구분하여 불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가야계 선김, 신라계 후김, 일본계 사성김으로 나뉘었다. 가야왕손이라는 족보에 의하면 연안 김씨, 고성 김씨 등도 가야계 이다. 고려 시대 한반도 전역에 많은 가야 김씨 본파가 있었으나, 조선 시대 김해로 통합, 몇몇은 지역으로 통합되었다고 한다. 김유신 자손들은 신라 후기 충청도 지역에 주로 거주하였다, 따라서 김해가 본래 관향은 아니었고 가야 김씨로 불리었다.

김해 김씨의 실존 시조는 장군 김유신(金庾信)이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김홍도, 김만덕, 대한제국 때 김기창, 김길창, 김활란, 김한규, 김형원, 김원군, 김인승, 김경주 등이 있다.

고려 김씨[편집]

성씨가 보급되기 시작한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김씨도 많다. 동주 김씨고려사에 따르면 황해도 호족 출신 김행파(金行波)가 왕건에게 김씨 성을 하사 받았다. 후손으로는 천추태후의 정부 김치양(金致陽)이 있다. 삼별초 장군 김통정의 경우 본래 성씨는 질, 진이었는데 진이 김과 같아서 김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몽골이 고려를 내정 간섭하던 시대에 한국은 한문 발음의 체계에 변이되는 과도기로 중세 중국어 발음과 광둥어, 몽골식 발음이 혼재하였다.

고려 중반에 시작된 본관으로는 연안 김씨(김섬한), 해주 김씨(2계통- 김사렴, 김문동), 해풍 김씨(개풍 김씨,김숭선)가 있다. 연안 김씨는 김섬한의 형이 강릉에 유배되었다고 전하므로 강릉, 경주 김씨 계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해주, 해풍(개풍)은 경순왕 후손이라고 한다.

여진족 김씨[편집]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에 귀화한 김씨 중 가장 많은 것은 여진족에 뿌리를 둔 김씨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귀화한 여진족 중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

6진(六鎭) 개척 당시 세종은 귀화한 여진족 수백 명에게 김씨 성을 하사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세조 때 기록에 나타난 귀화 여진족의 이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세종 때- 김거파(金巨波) 김고도개(金古道介) 김구음파(金仇音波) 김권로(金權老) 김대두마(金大豆麻) 김도을온(金道乙溫) 김생아(金生阿) 김소응거(金所應巨) 김속응합(金速應哈) 김시구(金時具) 김아을사(金阿乙沙) 김오광아(金吾光阿) 김자환(金自還) 김파보하(金波寶下) 김파을대(金波乙大) 김희주(金希主) 등.
  • 세조 때- 김걸도혁(金乞都革) 김공소(金公疎) 김교합(金咬哈) 김다롱합(金多弄哈) 김마상개(金麻尙介) 김우리개(金于里介) 김상미(金尙美) 김아도을치(金阿都乙赤) 김아라(金阿喇) 김아랑합(金阿郞哈) 김아을가(金阿乙加) 김역류(金易留) 김우두(金于豆) 김우허내(金右虛乃) 김유리가(金留里加) 김윤적(金允績) 김이랑합(金伊郞哈) 김인을개(金引乙介) 김입성(金入成) 김주창개(金主昌介) 김지하리(金之下里) 김차독(金箚禿) 김지칭가(金只稱哥) 김자라노(金者羅老).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때 이전에도 김씨 성을 하사받은 여진족들이 있다. 김고시가물(金高時加勿) 김광수(金光秀) 김대첩목아(金大帖木兒) 김동개(金同介) 등이 그들이다.

조선에 귀순한 여진족들에게 김씨 성을 내린 것은 12세기 여진족 아골타가 세운 금(金)나라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귀화한 여진족으로 김씨 성을 가지고 관직에 나간 사람이 많이 있다. 광해군(光海君) 때는 여진족이 조선 어디서든 살 수가 있어서 곳곳에서 그들을 볼 수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현재 여진족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하나도 없다. 현재 여진족을 조상으로 하는 김씨가 적은 것은 모화사상(慕華思想) 때문일 것이다. 족보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나오기 시작한 조선 중기 이후는 모화사상이 팽배해 있을 때였다. 당시 만주 오랑캐라고 하면 멸시의 대상이었다. 설사 여진족이나 거란족 귀화인을 조상으로 둔 귀화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감추었을 것이다.[3]

  • 청나라 멸망 후 왕족이 만주족 성씨 애신각라(愛新覺羅, 아이신교로[4])에서 아이신이 금을 뜻하여 한식 성씨 김(金, 진)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 김씨[편집]

  • 중국 태고 때 인물인 소호금천씨는 김(金)씨였다. 중국 한족(漢族) 김씨들의 상당 수는 소호금천씨를 시조로 모시기도 한다. 한무제 어머니인 효경황후 왕지의 전 남편은 김(金)씨였다.
  • 초나라와 관련이 있는 오월의 전(錢)씨는 진와 유사하게 발음되고 뜻도 금과 같이 돈(황금)을 뜻하여 전류의 자손들이 김(金)으로 개성하였다. 초나라 근(靳)도 진으로 발음되어 진(金)씨가 되었다고 믿어 지기도 한다. 원나라 때 일부 호족에게 김씨로 재본성하였다. 송나라 때 중국에 들어온 유태인들이 김(金), 리(李), 애(艾), 장(张)씨 성을 등을 득성했다고 한다. 김(金)의 중국 남방 지방 광둥어는 감, 금이다.
  • 여남 김씨 족보에는 6세기 동위 문무관 김응이 왕에게서 김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기록에는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아 실존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족보에 따르면 755년 동위 관리 김응 후손 김충(金忠)은 당나라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 오다가 경북 영덕에 표착하였다고 한다. 신라 경덕왕은 김충(金忠)에게 남민(南敏)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남민(南敏)은 신라 여성과 결혼하고 영양으로 이거하여 영양 남씨를 창본하였다. 아들 김석중(金錫中)은 영양에 옮겨 정착하여 영양 김씨를 창본하였다. 이후 세보가 소실되어 영양 김씨는 김충황(金忠晃)을 1세조로 하였다. 다른 문헌에 영양 김씨의 시조는 고려조에 전서를 지낸 김윤철(金允轍)이다.

일본계 김씨[편집]

김해 김씨의 시조는 임진왜란 때 왜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한 사야가(김충선)이다. 김충선(金忠善), 김성인(金誠仁)은 조선 선조, 정유재란 때 귀화한 일본인 장수다. 병자호란 때 전공을 세워서 성과 이름이 하사되었다. 김충선은 경북 우록동에 정착하였다. 아들 김경원(金敬元), 김경신(金敬信), 김우상(金右祥), 김계인(金繼仁), 김경인(金敬仁)과 손자 김진영(金振英)이 벼슬에 올랐으며, 후손 김여삼(金汝三), 김용하(金龍河)는 효행으로 유명하였다. 김성인(金誠仁)은 경북 청도에 정착하였다. 후손으로는 김귀성(金貴成), 김흥발(金興發), 김득추(金得秋), 김수태(金守泰) 등이 있다. 본관은 김해, 우록, 함박이다. 일본계 김해 김씨는 2000년 대한민국에 약 20만 명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월록(日月錄)》이라는 문헌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귀순한 일본인으로는 김상의(金尙義)라는 사람도 있다. 일본 성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김충선이나 김상의에 앞서 귀화한 일본계 김씨들도 있다. 조선 세종 때 귀화한 김호심파(金好心波), 성종 때 귀화한 김삼보라사야문(金三甫羅沙也文)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이름을 보면 일본에서 쓰던 이름에 김씨 성을 붙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후손도 적지 않겠지만, 현재 일본계 귀화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은 김충선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뿐이다.

한편, 일본은 삼국시대 부터 를 김(金)으로 적어 왔다.

본관[편집]

각주[편집]

  1. 참고: 琻,鍂은 궉;鴌씨 등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옥편에는 없는 한자이며 중국대옥편과 같은 전문옥편 등에나 나오는 한자들이다. 참고로 한글2007과 같은 워드프로그램에서도 '김'을 입력 후 한자변환으로 찾을 수 있다. 궉도 마찬가지
  2.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8> 김해김씨(金海金氏), 세계일보, 2011년 5월 24일
  3. 金丁鉉 姓氏연구가, 우리나라엔 金씨가 왜 그렇게 많을까, 월간조선, 2013년 6월
  4. 최근 KBS에서 푸이의 성을 아이신줘러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