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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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陜川 海印寺)
대한민국 대한민국사적

대적광전
종목 사적 제504호
(2009년 12월 21일 지정)
면적 56,469㎡
소유 해인사
위치
해인사 (대한민국)
해인사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해인사 (치인리)
좌표 북위 35° 48′ 05″ 동경 128° 05′ 53″ / 북위 35.8014667° 동경 128.097999° / 35.8014667; 128.097999좌표: 북위 35° 48′ 05″ 동경 128° 05′ 53″ / 북위 35.8014667° 동경 128.097999° / 35.8014667; 128.097999
정보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v  d  e  h한국 불교5대 총림 (빨간색은 삼보종찰)


해인사(海印寺)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서 팔만대장경세계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150여 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리고 있다. 불교삼보사찰 중 법보(法寶) 사찰로 유명하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의 본존불은 비로자나불이다.

역사[편집]

해인사의 모습

남북국 시대 802년 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과 ‘이정’[1]이 창건했다.[2] 그들은 가야산에 초막을 세우고 참선을 했는데 등창으로 고생하던 애장왕의 왕비의 병을 낫게 해주어 애장왕이 절을 창건하도록 했다. 순응과 이정 이후 ‘결언대덕’이란 승려가 사찰 창건을 계속했고 주지가 되었다.[3]

918년에는 승통희랑[4]이라는 당시 해인사 주지가 고려를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고려 태조가 국찰로 삼았다. 대각국사 의천이 《속장경》의 간행을 시도한 곳이다.

해인사는 5차례가 넘는 화재로 인해 여러 번 중창되었으며, 그에 따라 창건 당시의 건축은 알 수 없고, 현재의 전각은 대부분 조선 말기 때의 것이며, 3층 석탑·석등 등이 현존한다. 1481년 조선 성종 12년 이후 8년간 중건하였고,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국보로 지정된 장경판전(藏經板殿)에는 유명한 《고려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해인사는 1993년성철 스님이 입적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 전쟁[편집]

해인사는 광복한국전쟁 때 위기를 맞게 된다. 1951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대한민국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퇴각하지 못하고 남은 1천여 명의 북한군 잔당들이 해인사를 중심으로 게릴라 전을 전개했다. 이에 UN군에서는 폭격기 4대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당시 공군 편대장이었던 김영환 대령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소실될 것을 우려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로써 해인사는 폭격당할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김영환은 그 공으로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했고, 현재 해인사 경내에는 그를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문화재[편집]

세계기록유산, 세계문화유산

해인사에 보존되어있는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은 현재 세계기록유산, 세계문화유산으로 각각 지정되어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동양 각국의 대장경과 비교할 때 오탈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글꼴이 한 사람이 새긴 듯이 일정해서 자체가 예술품처럼 느껴지는 고려대장경이다.

해인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장경판전도 외양의 아름다움은 물론 그 안에 숨겨진 과학적 지혜가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두 가지 요소로 인해 해인사는 법보종찰이라 불린다. 불법승 삼보 가운데 부처님의 말씀을 간직한 곳이라는 뜻이다.

성철스님 이래 현대 한국불교사에서는 법보뿐 아니라 법통까지도 해인사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위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스님이 머물고 배출되면서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한국불교의 중심이자 상징 같은 절이 바로 해인사이기 때문이다.


해인사의 성보문화재

해인사는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20여 점이나 된다.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해서 제52호인 장경판전 그리고 국보 제206호로 지정된 고려목판까지 국보가 3점이며, 보물이 20여 점에 사적과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민속자료 등이 각 1점씩 있다. 다음은 해인사가 보유한 국가지정문화재 목록이다.

국보[편집]

  • 국보 제32호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 국보 제52호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陜川 海印寺 藏經板殿)은 국보 제52호로, 해인사에 딸린 건물의 하나이다.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 남쪽의 것을 수다라장(修多羅藏), 북쪽의 것을 법보전(法寶殿)이라 하는데 여기에 고려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다. 그 앞 두 동의 소당에는 보판(補板)과 잡판(雜板)을 소장하고 있다.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국보 제206호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보물[편집]

  • 보물 제128호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
  • 보물 제129호 합천 월광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 보물 제222호 합천 치인리 마애여래입상
  • 보물 제264호 합천 해인사
  • 보물 제518호 합천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 보물 제734호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 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 보물 제1208-2호 춘추경좌씨전구해 권60~70
  • 보물 제1242호 합천 해인사 길상탑
  • 보물 제1253호 해인사 동종
  • 보물 제1273호 해인사영산회상도
  • 보물 제1300호 합천 해인사 홍제암
  • 보물 제1301호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
  • 보물 제1697호 합천 해인사 감로왕도
  • 보물 제1777호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해인사 비로자나불상은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불상이다.[1]

1200년 된 쌍둥이 비로자나불상으로서, 883년에 제작된 신라 목조 불상이다. 그동안 팔만대장경 전각의 법보전에 모셔져 있던 불상인데, 2005년 6월에 새로 금칠을 하던 과정에서 883년에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2]

이를 보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에 방문했으며, 대통령이 약속한 특별지원금 30여억원으로 비로자나 부처님 영구보존사업을 벌여왔으며 2년여만에 마무리됐다. 대비로전의 낙성식에 다시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였다.

  • 보물 제1778호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
  • 보물 제1779호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 보물 제1780호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
  • 보물 제1799호 합천 해인사 지장시왕도
  • 보물 제1806호 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 목판

기타 문화재[편집]

  • 사적 제504호 합천 해인사
  • 명승 제62호 가야산 해인사 일원
  • 천연기념물 제541호 합천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
  • 중요민속문화재 제3호 광해군 내외 및 상궁 옷



체험 및 시설[편집]

템플스테이[편집]

해인사에서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타[편집]

김영환 대령[편집]

1951년 6.25전쟁 당시 김영환 대령은 해인사에 적군들이 숨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명령에 불복 하고 해인사 안에 숨어 있는 적군들에게 폭탄을 투하 하지 않았다. 이는 해인사를 지키기 위함이었으며 2002년에는 해인사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린 공적비를 세웠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편집]

평소 불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권양숙 여사는 2002년 10월 1일 당시 대선을 앞두고 합천 해인사에 머물고 있는 조계종 종정법전(法傳) 스님으로부터 보살계와 '대덕화(大德花)'라는 법명을 받았다. 고(故) 육영수 여사와 같은 법명이다. 이러한 법명 수계는 불교계의 민심이 실린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불교계의 기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3] [4] 이후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3회 해인사를 방문,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다 방문을 하였다.

2003년 12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를 불시 방문해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총무원장 법장스님과 환담한 뒤 오찬을 함께 했다. 사패산 터널 문제에 대한 공약을 못 지키게 되었다면서 양해를 구했다.[5][6]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8월 30일 T-50 골든이글 양산 1호기 출고식에 참석했다.[7] 그리고 해인사에 들러 비행기 사고 없이 잘 날아다니고 잘 팔아달라고 부처님께 기도를 했다.[8] 취임 이래 두 번째 해인사 방문이다.

2007년 11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은 해인사 대비로전(大毘盧殿) 낙성 대법회에 참석, 축사를 하였다. 세 번째 해인사 방문이다.[9]

2009년 5월 24일 해인사 승려 300여명이 분향소를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다. 하안거를 깨고 나와 조문을 한 것으로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10]

사진[편집]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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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順應과 利貞
  2.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3. 決言大德
  4. 僧統希朗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