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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于山國
우산국
?11세기 초
신라의 조공국
(512년 6월~9세기)
고려의 조공국
(930년 8월~11세기 초)
정치

 • ?~512년 6월
전제군주제
우해왕[1]
역사
 • 512년 6월
 • 930년 8월
 • 1018년 11월
 • 11세기 초
신라에 복속
고려에 복속
여진족 해적의 침입
고려에 흡수

현재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우산국(于山國)은 삼국시대에 현재의 경상북도 울릉군울릉도와 부속섬을 다스리던 나라다.

역사[편집]

첫 등장[편집]

244년 왕기위궁을 토벌하러 옥저 동해안에 도착했고 노인에게 동해에 사람이 사느냐 물으니 바다 동쪽에 섬이 있고 사람이 살고 있으나 여자만 있고 남자는 없고 해마다 칠월이 되면 소녀를 가려 뽑아서 바다에 빠뜨린다고 하였다.[2]

신라의 복속[편집]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할 때, 무력에 의한 항복보다는 교묘한 계책을 써서 항복을 받으려고 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나무 사자를 만들어 배에 나눠 싣고 우산국 해안에 이르러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놓아 모두 밟아 죽이겠다"라고 하자 512년 6월 항복해 와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3]

고려에 복속 그리고 여진족 해적의 침입과 멸망[편집]

930년 우산국은 백길(白吉), 토두(土豆)를 보내 토산물을 바치면서 복속을 원했고 태조는 두 명에게 관직을 내렸다.[4] 1018년(현종 9년) 고려는 우산국이 동북여진의 침략을 받아 농사를 못하게 되자, 이원구(李元龜)를 보내 농기구를 하사했고[5] 1019년(현종 10년) 여진족으로부터 도망쳐온 자들을 모두 돌아가게 하였다.[6] 1022년(현종 13년) 우산국 백성 중 여진족에게 노략질 당하여 망명온 자들을 예주에 거주하게 하고 호적에 편입되면서[7] 멸망하였다.

각주[편집]

  1. 조은희. “「우해왕과 풍미녀의 전설」”. 《디지털울릉문화대전》. 2017년 12월 1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2월 13일에 확인함. 
  2. 진수 (3세기). 〈왕기가 별도로 군대를 파견하여 궁을 추격〉. 《三國志》 [삼국지]. 권30 동이전. 2017‎년 ‎6‎월 ‎6‎일에 확인함. 
  3. 김부식 (1145년). 〈지증(智證) 마립간(麻立干) 13년(十三年) 우산국을 정벌하다 (음력 512년 6월)〉. 《三國史記》 [삼국사기]. 제4권(卷第四) 신라본기(新羅本紀) 제4(第四). 2017년 8월 5일에 확인함. 
  4. 〈태조(太祖) 13년(十三年) 우릉도에서 공물을 바치다. 《高麗史》 [고려사]. 권1(第一) 세가(世家) 권제1(卷第一). 1451년. 2017년 12월 13일에 확인함. 
  5. 〈현종(顯宗) 9년(九年) 우산국에 농기구를 하사하다. 《高麗史》 [고려사]. 권4(第四) 세가(世家) 권제4(卷第四). 1451년. 2017년 12월 13일에 확인함. 
  6. 〈현종(顯宗) 10년(十年) 우산국 사람들을 돌려보내다. 《高麗史》 [고려사]. 권4(第四) 세가(世家) 권제4(卷第四). 1451년. 2017년 12월 13일에 확인함. 
  7. 〈현종(顯宗) 13년(十三年) 우산국 피난민을 호적에 편입하다. 《高麗史》 [고려사]. 권4(第四) 세가(世家) 권제4(卷第四). 1451년. 2017년 12월 1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