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국

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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辰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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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108년의 진(辰) | ||||
정치 | ||||
정부 형태 | 부족 연합체 | |||
역사 | ||||
• 성립 | 기원전 4세기 | |||
• 국가 승계 | 기원전 2세기 삼한(진한, 변한, 마한)으로 각각 승계됨 | |||
지리 | ||||
위치 | 한반도 남부 | |||
인문 | ||||
공용어 | 알 수 없음 | |||
종교 | ||||
종교 | 무속신앙 (애니미즘, 조상 숭배) | |||
기타 | ||||
현재 국가 | ![]() |
한국의 역사 韓國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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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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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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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辰)은 삼한 각 부족 연맹체가 발생하기 이전에 한반도 남부에 위치하던 국가 혹은 국가 연맹체다. 기원전 4세기 경에서 기원전 107년 무렵 청동기 및 초기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반도 중남부, 특히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한 것으로 여겨진다.
개요[편집]
기원전 4세기에서 3세기경부터 다수의 유이민(流移民)과 철기가 한강 이남으로 전파되면서 남한의 원시사회가 붕괴되고 새로운 정치적 사회가 성립되었는데, 이를 진(辰)이라 한다. 위만조선이 대동강 유역에 웅거할 때 진국은 금속문화의 수용을 위하여 한나라(漢)와 통교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1] 고조선과 공존하였고 이후 진한(辰韓), 변한, 마한의 삼한으로 정립되었다. 제정일치 사회로서 세형 동검(細形銅劍)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한 농경사회로 추정된다.[2] 다만, 기록이 매우 적어서 이것이 특정한 한 국가를 가리키는지 혹은 인접한 여러 소국이나 정치 집단을 통틀어 말하는지는 뚜렷하지 않다.[주해 1] 실제로 미시나 쇼에이는 진국을 어떤 하나의 뚜렷한 실체가 있는 국가가 아닌 관념의 영역으로 보았다.[3] 이후 이병도는 부족연맹체로 보기도 하였다.[4]
기원전 108년 한나라의 군현이 설치된 이후에도 진번군이 폐지되는 등의 변동에 따라 적지 않은 유이민들이 발생하였다. 한 단계 앞선 금속기 문화를 지닌 고조선계 주민들이 이주해 옴에 따라, 한반도 중·남부지역의 한족사회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대전-익산, 대구-경주, 김해-마산 등지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는 새로운 금속기문화의 유적과 유물은 그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그 결과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마한(馬韓)·변한(弁韓)·진한(辰韓)의 삼한(三韓)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삼한 역시 그 각각이 집권력을 지닌 국가를 이룬 것은 아니었다. 그 내에 비슷한 문화를 영위하던 여러 소국과 부족을 포함하는 종족 단위로서의 성격을 띠었다. 이 삼한사회에서 백제와 신라 등이 고대국가로 등장하게 된다.[5]
역사[편집]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에 의해 중국에 변란이 생기자 연나라[주해 2], 제나라[주해 3], 조나라[주해 4] 등의 중국의 수많은 백성들이 조선으로 피난을 가서 그곳에서 정착한다. 이후 기원전 194년에 고조선의 준왕(準王)이 연나라의 위만에 의해 찬탈되어 위만조선이 세워진다. 이 때 준왕은 바다를 건너 한의 땅(韓地)에 정착해 한왕(韓王)을 자칭한다.[주해 5] 여기서 서술된 한의 땅에 대해서 이승휴와 권람은 각각 《제왕운기》와 《응제시주》에서 익산으로 비정한다.[주해 6][주해 7] 이는 점토대토기가 금강과 만경강을 중심으로 발견되는 등 고조선 유민의 이동이 고고학적으로 관찰됨으로서 뒷받침된다.[6] 준왕의 세력은 곧 절멸하고, 마한의 목지국 진왕(辰王)이 이 땅을 다시 차지한다.[주해 8]
진국은 이후 《한서》에서 처음으로 명시된다. 위만의 손자였던 우거왕이 한나라 유민을 받아들여 점차 강성해지자, 한나라 황제에게 입현하지도 않고 진번과 진국이 글로 알현하지도 못하도록 막았다는 서술이다.[주해 9] 이후 《삼국지》에 인용된 《위략》은 기원전 109년에 한무제는 섭하(涉何)를 보내 우거를 달래려 하였으나 우거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우거를 달래는데 실패한 조선상(朝鮮相) 역계경(歷/曆谿卿)은 이천여호와 함께 동쪽의 진국(辰國)으로 망명하고, 우거왕 조선과 교류하지 않았다는 서술에서 두 번째로 등장한다.[주해 10]
이후 사료에서는 더이상 진국에 대한 서술이 등장하지 않고 삼한만 등장하는데다, 성토분구묘가 기존의 분묘형식을 대체하는 등 고고학적 지표의 변화도 발생하였기 때문에 고조선의 멸망 이후 진국도 삼한으로 대체되었다고 간주한다.[7] 삼한이 진국을 승계했다는 서술은 《후한서》와 《삼국지》에서 등장한다. 《후한서》에서는 진한, 변한, 마한의 전신으로 취급되는데,[주해 11] 이보다 200여년 이전에 서술된 삼국지에서는 진한의 전신으로 서술한다.[주해 12]
기록상의 논란[편집]
사마천의 《사기》 역시 진국을 언급하는데, 판본마다 그 언급되는 내용이 달라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현대 통용되는 남송시대에 집성된 《사기》 남송본과 《사기》 고본을 참조하여 983년에 쓰여진 《태평어람》에서는 "眞番旁衆國"라 하는 것과는 달리, 북송시대인 994~997년에 교감되어 집성된 《사기》 북송본에서는 "眞番傍辰國"라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8] 이에 따라 "衆國"설과 "辰國"설이 나뉘게 된다.[9] 그러나 현재에는 "辰國"이 원본이라는 주장이 우세한 편이다.[10][11] 이는 기원후 1세기에 저술된 《한서》가 "眞番辰國"라 적고 있기 때문인데, 《한서》를 인용한 《삼국유사》에서도 이와 같이 적고 있다.
강역[편집]
진국의 영향권에 대해 다양한 가설이 있다. 1950년대 이전에는 삼한 모두가 진국의 후예라는 《후한서》의 진술을 토대로 한반도 남부 전체를 지배했을 것이라는 정인보, 이병도 등의 소위 삼한총왕설이 있었다.[12][13] 그러나 서기 2~3세기의 목지국 진왕도 소국들을 직접 지배하지 못하고 맹주에 그친 것을 고려할 때 기원전 2세기에 한반도 남부를 전체 지배할 정도의 통치력이 수립될 수 없었다는 천관우의 비판이 등장하며,[14] 진국의 위치에 대해 다양한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진국의 위치에 대해 한강 유역, 경상도 유역, 금강과 만경강 유역 이렇게 세 가설이 공존한다. 역사학자 노중국은 북송본 《사기》 남송본의 "眞番傍辰國"을 근거로 진번군이 황해도에 있었으므로 진국은 한강 유역에 위치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5] 천관우는 진한이 진국을 계승했다는 《삼국지》의 서술을 근거로 진한이 존재했던 경상도에 진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했었는데,[14] 이후 다시 한강유역설을 주장한다.[16] 박순발도 천관우와 비슷하게 낙동강 유역에 진국이 존재했을 것이라 추정했다.[17] 그러나 이후 고고학적 발굴 결과 초기 철기문화와 전한에서 제작된 전한경이 익산 평장리, 공주 공산성 등에서 출토됨에 따라 금강과 만경강 유역설이 힘을 얻고 있다.[18][19][20][8]
언어[편집]
알렉산더 보빈은 한반도 남부와 제주도에서 널리 사용되던 언어는 일본어족이었는데, 이후 삼한어를 사용하던 상고한국어 화자들이 이를 대체했을 것이라고 말한다.[21] 즉 반도 일본어와 한국조어가 진국에 공존했을 것이라는 것이 보빈의 주장이다.[22] 또한 이러한 대체과정에서 야요이 시대에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으로 사람들이 이주하였다고 말한다.
같이 보기[편집]
주해[편집]
- ↑ 《사기(史記)》의 "眞番旁衆國"이라는 구절이 판본에 따라 "眞番傍辰國"으로 나오고, 《漢書(한서)》에는 "眞番 辰國", 《資治通鑑(자치통감)》에는 단지 "辰國"으로 나오는 등 사료에 따라 여러가지 서술이 존재한다.
- ↑ 중원 동북방 변방에 위치한 국가로, 국토는 비교적 넓은 편이나 국력은 미미하였다. 혼란한 전국 시대에도 제나라외에 강대국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를 않아 전국시대 말 까지 나름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소진이 제일 먼저 찾은 나라가 바로 연나라이다.
- ↑ 인구밀도가 높고 즉묵등 풍부한 곡창지대까지 갖고 있는 부유한 거대국가이다. 거기다 남쪽으로 태산, 동쪽으로 낭야산, 북쪽으로 발해등 3면의 천혜의 장벽까지 갖추었다.
- ↑ 소진은 당시 진나라를 대적 할 유일한 강대국으로 조나라라고 조왕을 추켜 세웠다.
- ↑ 將其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 좌우 궁인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한지(韓地)에 도달하여 한왕(韓王)을 자칭했다. -三國志/卷30/東夷#韓
- ↑ "準乃移居金馬郡", 《제왕운기》
- ↑ "箕準避衛滿之亂 浮海而南至金馬郡", 《응제시주》
- ↑ "準後滅絶, 馬韓人復自立爲辰王" -〈韓〉,《後漢書(후한서)》
- ↑ "傳子至孫右渠 … 眞番 辰國 欲上書見天子 又雍閼弗通" - 〈朝鮮〉, 《漢書(한서)》
- ↑ "《魏略》曰:初,右渠未破時,朝鮮相曆谿卿(歷谿卿)以諫右渠不用,東之辰國,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亦與朝鮮貢蕃不相往來。至王莽地皇時,廉斯鑡爲辰韓右渠帥,聞樂浪土地美,人民饒樂,亡欲來降。出其邑落,見田中驅雀男子一人,其語非韓人。" - 〈韓〉,《三國志(삼국지)》
- ↑ "韓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 … 凡七十八國 … 皆古之辰國也" - 〈韓〉,《後漢書(후한서)》
- ↑ "辰韓者古之辰國也" - 〈韓〉,《三國志(삼국지)》
각주[편집]
- ↑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고대국가의 형성과 문화 > 동·남부의 부족사회 > 진국〉
- ↑ 이현혜 (1995). “진국(辰國)”.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0년 10월 8일에 확인함.
- ↑ 三品彰英, 1946, 「史實と考證 -魏志東夷傳の辰國と辰王-」『史學雜誌』 55-1.
- ↑ 이병도, 1976, 『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 ↑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고대국가의 형성과 문화 > 고조선 > 삼한과 진국〉
- ↑ 성 정용 (Professor of Archaeology). 마한 의 시간 과 공간. 《마한 고고학 개론》. ISBN 978-89-6347-390-1.
- ↑ 성 정용 (Professor of Archaeology). 마한 의 시간 과 공간. 《마한 고고학 개론》. 109쪽. ISBN 978-89-6347-390-1.
- ↑ 가 나 박대재 (2006). 《고대 한국 초기 국가 의 왕 과 전쟁》. 경인문화사. ISBN 89-499-0456-X.
- ↑ 정중환 (1914-2001); 丁 仲煥, 1914- (2000). 《가라사연구》 초판. 혜안. ISBN 89-8494-100-X.
- ↑ 권오영. (1995). 三韓社會 '國'의 구성에 대한 고찰. 한국고대사연구, 10(), 11-53.
- ↑ 한국 고대사 연구회. 韓國古代史研究會 (1995.7). 《三韓의 社會와 文化》. 新書苑. ISBN 89-7940-337-2.
- ↑ 「삼한문제(三韓問題)의 신고찰(新考察)」(이병도,『진단학보(震檀學報)』 3,1935 ;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박영사,1976), p.22
- ↑ 정인보 (1946). 《조선사연구(상)》. 서울신문사. 110쪽.
- ↑ 가 나 천관우, 「삼한고」 제1부-삼한의 성립과정- 《사학연구》 26, 한국사학회, 1976
- ↑ 노중국 (2018). 《백제 정치사》. 일조각. 55쪽. ISBN 978-89-337-0753-1.
- ↑ 천관우, 1989, 『古朝鮮史‧三韓史硏究』, 일조각.
- ↑ 박순발 (1998). 《馬韓史研究》. 충남대학교 출판부. ISBN 89-7599-031-1.
- ↑ 김정배. (1976). 논문 : 준왕 및 진국과 「 삼한정통론 」 의 제문제 - 익산의 청동기문화와 관련하여 -. 한국사연구, 13(0), 3-28.
- ↑ 전영래 (1983). “한국 청동기문화의 연구 - 금강유역권을 중심으로”. 《馬韓·百濟文化》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6.
- ↑ 송호정, 2015, 「기원전 2세기 고조선 준왕의 남래와 익산」, 『한국고대사연구』 78.
- ↑ Vovin, Alexander (2013). "From Koguryo to Tamna: Slowly riding to the South with speakers of Proto-Korean". Korean Linguistics. 15 (2): 222–240.
- ↑ Vovin, Alexander. “Origins of the Japanese Language”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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