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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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이영주
性徹 李英柱
대한민국 문화공보부 등록종단 종단장
임기 1987년 3월 21일 ~ 1990년 1월 2일
대통령 전두환
노태우
총리 노신영
이한기
김정렬
이현재
강영훈
신상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출생일 1912년 4월 6일
출생지 일제 강점기의 기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산청군
사망일 1993년 11월 4일 (81세)
사망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학력 경상남도 진주고등보통학교 졸업
경력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속명(俗名)은 이영주(李英柱)
법명(法名)성철(性徹)
아호(雅號)는 퇴옹(退翁)
종교 불교

성철(性徹, 1912년 음력 2월 19일(양력 4월 6일)~1993년 11월 4일)은 대한민국승려이다. 속명(俗名)은 이영주(李英柱)이고 아호는 퇴옹(退翁)이다. 대한민국의 선종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典型)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승려이다.[1]

생애[편집]

1912년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태어났다. 1936년 해인사(海印寺)에서 동산(東山) 대종사(大宗師)에게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1938년 운봉(雲峰)을 계사(戒師)로 보살계(菩薩戒) · 비구계(比丘戒)를 받았고 봉암사(鳳巖寺)에서 청담(靑潭)과 함께 수행하면서 불타(佛陀)답게 살자고 결사(結社)하는 등 새로운 선풍(禪風)을 고양(高揚)시켰다. 1967년 해인총림(海印叢林) 초대 방장(方丈)이 되었고 1981년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宗正)에 취임하였다. 세속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1993년 11월 4일 세수 82세에 열반에 들었다.[1]

교리를 대상으로 한 성철의 견해는 저서인 《선문정로》(1981)에 잘 노정되어 있다.[1] 대한민국 선불교의 수행 전통으로 여겨온 지눌돈오점수(頓悟漸修)에 반대하여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창했다.[1] 그 후 현재까지 대한민국 불교 철학계의 돈 · 점 논쟁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1] 성철은 지행합일(知行合一) 단계의 지(知)만이 진정한 지(知)이고 지눌돈오점수는 실제(實際)이고 세부까지 포함한 현실을 좇지 않는 직접 지각하거나 체험할 수 없는 관념과 표상(表象)에 경도(傾倒)되어 실증성이 희박(稀薄)하게 조직된 이론에 근거한 지(知)일 뿐 참 지(知)가 아니라고 주장(主張)하였다.[1] 그러나 지눌과 성철은 가르침의 대상이 달랐으므로 시비(是非)를 가리기가 어렵다.[1] 지눌은 일반인에게 불교 교의를 풀어서 밝혔고 성철은 수행하는 승려에게 설법하였다.[1]

중국 대륙에서 임제종(臨濟宗)을 개종(開宗)한 임제(臨濟)의 후예(後裔)인 선사(禪師) 유신(惟信)이 선종의 내밀(內密)한 특징인 소위 도교에서 영향받은 화광동진(和光同塵)을 교시(敎示)하려는 취지(趣旨)로 한 설법(說法)인,

  • “내가 삼십 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았다가 나중에 선지식(善知識)을 친견(親見)하여 깨*침에 들어서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보았다. 지금 휴식처를 얻고 나니 옛날과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으냐? 다르냐? 이것을 가려내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같은 경지에 있다고 인정하겠노라.”

중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고측(古則)을 성철이 원용(援用)하여 인상(印象)을 남기면서 일반인에게도 유명해졌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화두(話頭)는 최초에 미망(迷妄)하는 단계는 수도(修道)하기 이전 평범한 일상계(日常界)이나 수도를 이용해 득도(得道)하면 체험하는 평범한 일상을 완벽히 초월한 세계는 일상에서 하는 착각(錯覺)이 적멸(寂滅)한 상태이나 진정하게 득도하려면 거기서 진일보(進一步)해 평범한 세계로 회귀하여야 한다. 화광동진을 이용해 다시 돌아온 그 세계는 외양상으로는 최초처럼 속(俗)되고 평범한 단계와 같으나 내면상으로는 처음과는 차원이 판이(判異)하다. 이는 나선형(螺旋形) 성격을 띤 회귀를 뜻한다. 이로 보아 임제(臨濟)의 후예(後裔)인 선사(禪師) 유신(惟信)이 설법한 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공안(公案)은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 사상을 그대로 해설한 교시(敎示)이다. 재언하면, 수도자(修道者)가 작고 대수롭지 않게 득도(得道)했을 때는 물이 산으로, 산은 물인 듯 혼란(混亂)스럽지만, 득도하는 규모가 확대되면 물은 물로, 산은 산으로 보게 된다. 외부 세계나 자연을 주관의 작용과는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관망(觀望)하는 태도를 획득한다는 뜻이다.

깨달음[편집]

1936년 25세에 출가한 성철스님(1912년-1993)은 승납 3년만인 1940년 29세 때,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하안거 중 문득 대오했다. 그러나 75대 경허조사(1849-1912)를 76대 만공조사(1871-1946)가 이었다고 하던 시절이어서, 정혜사의 만공스님을 찾아갔는데, 너무나 쉽게 깨달음을 인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을 하여 인가를 신청하지 않았다. 이후에 76대 만공조사를 77대 전강조사(1898-1975)가 이었다고 했는데, 전강조사에게도 인가를 신청하지 않았다.

불교에서는 다른 깨달은 선지식으로 부터의 인가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아도, 당대 조사스님의 인가는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당시 불교 관행이, 별로 큰 깨달음도 아닌데 쉽게 인가를 해주는 관행이었다고 하더라도, 조사의 인가는 반드시 받았어야 했다.

독서[편집]

선승들에게 책을 보지 말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던 성철 스님이 개인도서관을 두고, 유명한 과학보고서와 현대물리학이나 심리학 책을 제일 먼저 보았고, 좌선한 시간보다 책 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2]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인가해 줄 만한 선지식이 없다고 여길 경우, 독서를 통해 깨달음을 스스로 점검하라고 가르친다. 참선 수행자들에게 독서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깨닫기 전에 초보 명상가일 때에는, 그렇게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 명상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이고, 스스로 깨달았다고 선언한 이후에, 자신 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어 보이는 고승을 발견하지 못할 때에는, 여러가지 옛 서적을 살펴보아, 스스로 경지를 점검해 보라고 한다.[출처 필요]

학력[편집]

저작[편집]

육조단경(六組檀經)》, 《전등록(傳燈錄)》 등 선문(禪門)의 조사(祖師) 어록을 중심으로 많은 법어를 이루었는데 관념의 도그마(dogma)[주해 1]에 빠지지 말 것과 견성(見性)의 체험을 강조하였다. 1993년 해인사에서 입적(入寂)하였다. 저서로 《돈오입도요문강설》(1986) 등이 있다.

같이 보기[편집]

주해[편집]

  1. 논리에 맞고 이성에 근거한 증명과 비판이 불허(不許)되는 종교상 원리나 이치와 종교의 신앙 내용이 진리로서 공인된 종교상 교법(敎法) 그리고 종교상 신조를 통칭(統稱)하는 말이다.

각주[편집]

  1. 인명사전 > 한 국 인 명 > ㅅ > 성철,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8인의 스님들’ 수행보따리 풀었다, 한겨레, 2009-04-28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