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김인문
金仁問
지위
이벌찬(伊伐湌)
신상정보
국적 신라
출생일 629년
출생지 신라 금성
사망일 694년 (66세)
사망지 당나라 장안
배우자
종교 불교

김인문(金仁問, 629년~694년)은 신라왕족이자 문무왕 때의 장군정치가이고,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이며 문무왕의 친동생이다. 신라삼국통일에 참여하여 활동하였으며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사료상으로는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조상이라 되어 있다. 그런데 강릉 김씨 족보에서의 김주원은 김인문의 동생인 김문왕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다.

생애[편집]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하였고, 사어(射御 : 활쏘기와 말 타기)·음률(音律)·예서(隸書)에 능하였으며, 식견이 넓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진덕여왕 5년(651년), 당나라에서 숙위(宿衛)하고, 태종무열왕이 즉위하자 압독주 총관(押督州摠官)이 되어 장산성(獐山城)을 쌓고 공신이 되었다. 백제가 자주 침공해 오자 당나라에 파견되어 원군을 청하니 당 고종소정방을 신구도 대총관(神丘道大摠官)으로, 김인문을 부총관으로 임명하여 백제를 정복하였다. 그 후 당나라에서 예전과 같이 숙위하며 고구려 정복에 양곡을 보급했고, 문무왕 8년(668년) 당과 합세, 평양성을 함락하고 고구려를 정복하였다.

676년신라당나라 세력을 축출하려 하자 당 고종은 김인문을 신라의 왕으로 대치하려 하기도 했다. 그후 김인문은 당나라로부터 보국 대장군 상주국(輔國大將軍上柱國)에 임명된 후 694년 당나라에서 죽었다.

가계[편집]

  • 부왕 : 태종무열왕(太宗武烈大王, 604 - 661) - 신라 제 29대 국왕
  • 모후 : 문명왕후(文明王后, ? - 681)
  • 형 : 문무왕(文武大王, 661 - 680) - 신라 제 30대 국왕

사후[편집]

사후 시신은 신라로 이송되어 금성 남부에 장사되었다. 그 뒤 효소왕은 그를 태대각간에 추증하였다. 1990년대 이후 그의 묘비명과 문무왕 묘비명에서 신라 태조를 성한왕이라 기록한 구절이 발견되어 김성한김알지에 대한 논란이 생겼다.

평가[편집]

어려서부터 학문을 즐기고 다재다능했던 김인문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웠고, 신라 사이의 외교를 휼륭히 수행하였다. 김인문은 숙위로서 당에 머물며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하는 데 외교력을 발휘했다. 삼국통일 후에는 신라의 분쟁 조정 과정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백제를 정복할 때는 당의 장군으로, 고구려를 정복할 때는 신라군 사령관으로 신라를 이끌었다. 나당 전쟁이 발발했을 때 당은 문무왕을 폐위하고 김인문을 신라의 새로운 왕으로 삼는다고 할 정도로 김인문을 소중하게 여겼다. 결국 나당 전쟁에서 승리한 문무왕이 당에 사죄하는 것으로 전쟁이 끝났는데, 이때 김인문이 중재자로서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1]

김인문이 등장한 작품[편집]

영화[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Heckert GNU white.svgCc.logo.circle.svg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신라의 삼국통일〉"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