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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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韓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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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辰韓)은 한반도 남부에 있던 삼한(三韓)의 하나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지역으로,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마한(馬韓), 남쪽은 변한(弁韓)에 접해 있었다. 모두 12개의 국가로 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발전하여 신라(新羅)가 되었다.

형성[편집]

삼국지》, 《후한서》 및 《후한서》를 인용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한은 중국 (秦)에서 한반도로 옮겨온 유민인데, 마한이 동쪽의 땅을 분할하여 이들을 살게 하였다고 한다. 반면에,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에는 진한의 소국 중 하나인 사로국(斯盧國)의 원 거주민들이 고조선의 유민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 발굴되는 유물의 양상도 고조선 계통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진한(辰韓)은 고조선 계통의 종족으로 이해되고 있다. 진한의 12국은 진왕(辰王)에게 소속되어 있었는데, 진왕(辰王)은 마한 사람이 대대로 이어갔다고 한다. 이를 두고 마한의 진왕(辰王)이 진한 12국의 종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진한(辰韓)의 지배자인 진왕이 따로 존재했다고 보는 견해[1] 가 있다.

진한은 초기에는 마한의 통제를 받았고, 마한이 망한 뒤에는 백제의 통제를 받았다. 그 통제는 소극적으로 (i) "신수두"의 건설과 (ii) '신한' 칭호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i)해마다의 조알(朝謁)과 (ii) 토산물의 진공(進貢)을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3세기 무렵부터 중국에 독자적으로 사신을 보내기도 하는 등 소국 연맹체의 세력이 크게 신장하였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로국(후일의 신라)를 중심으로 결속하여 세력을 성장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진한 12개국[편집]

삼국지》의 기록에 의하면, 진한을 이루는 12개의 소국은 사로국(斯盧國)·기저국(己柢國)·불사국(不斯國)·근기국(勤耆國)·난미리미동국(難彌理彌凍國)·염해국(冉奚國)·군미국(軍彌國)·여담국(如湛國)·호로국(戶路國)·주선국(州鮮國)·마연국(馬延國)·우유국(優由國)이다. 이 중 큰 나라는 5 ~ 6천 가구 작은 나라는 6 ~ 7백 가구의 규모였다.

삼국사기》에는 이 외에도 아래와 같이, 훗날 신라에 병합된 소국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경제[편집]

토지가 비옥하고 아름다운 토지에 의거하여 벼·보리·기장·조 등의 농업과 누에치기 ·길쌈 등을 힘써서 곡식과 옷감들을 생산하였다. 철전(鐵殿)을 사용하여 주변국과 무역을 하였다. 성(城)과 울타리가 존재하였다.

사회[편집]

마한과 언어가 달랐다. 단, 양서 제이열전에서는 진한이 사용하는 어휘가 중국 진나라 언어와 비슷하다고 해서 마한과 다르다고 해서 애매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마한과 진한은 언어 자체가 다른 게 아니라 사용하는 어휘가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진한 땅에 중국 진나라 유민들이 이주해오기 이전에는 진한의 토착민들이 살고 있었고 진한 땅이 본래 마한의 영토였던 걸 감안하면 진한의 토착민은 본래 마한과 언어가 통했을 가능성이 높다. 풍속이 유순하다. 어린 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드는 편두(褊頭) 풍속이 있어서, 머리가 납작하였다. 남녀에 구별이 있다.

문화[편집]

수렵에 능하고 의리와 충성심이 강하고 가무를 즐겼다.

참고문헌 및 링크[편집]

각주[편집]

  1. 천관우, 〈진·변한제국의 위치 시론〉, 《백산학보》20,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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