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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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마곡사 전경
종파 대한불교 조계종
위치
마곡사 (대한민국)
마곡사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운암리)
좌표 북위 36° 33′ 32.1″ 동경 127° 00′ 44.8″ / 북위 36.558917° 동경 127.012444° / 36.558917; 127.012444좌표: 북위 36° 33′ 32.1″ 동경 127° 00′ 44.8″ / 북위 36.558917° 동경 127.012444° / 36.558917; 127.012444


마곡사(麻谷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있는 절이다.[1]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이다.


역사[편집]

640년(신라 선덕여왕 9년)에 중국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월정사와 통도사를 창건할 때 선덕여왕에게 토지 200결을 받아 전탑을 세우고 이곳 마곡사도 함께 창건했다고 전한다. 고려 명종 때(1172년) 보조국사 지눌이 중수하고 범일이 재건하였다.그뒤 보철화상이 주석할 때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이 삼대처럼 빽빽하게 많아서 마곡사라는 절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나말여초의 혼란기에 절이 폐사되고 이곳도 200년 가량 도둑의 소굴이 되었는데, 고려 명종 2년(1172년)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도둑떼를 몰아낸 후 제자 수우스님과 함께 대규모 불사를 벌여 중창했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세조가 이 절에 거둥해서 영산전 현판을 친필로 남기기도 하고 자신이 타고 온 가마를 두고 갔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1651년(효종 2년)에 대웅전, 영산전, 대적광전 등을 중건했다. 근대에 들어서 구한말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군 장교를 죽이고 인천형무소에 투옥되었다 탈옥한 뒤에 이곳으로 피신해서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출가 생활을 했다. 지금 대광보전 앞 향나무는 당시 김구 선생이 직접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2]

특징[편집]

다양한 시대의 문화재가 한 자리에

마곡사 주변의 물과 산의 형태가 태극형이라고 해서 <택리지>나 <정감록> 등 여러 감여서에서는 이곳을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꼽았다. 그래서인지 마곡사에는 시대를 초월한 여러 문화재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마곡사에서는 특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전각의 현판들을 찬찬히 음미해서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볼 것이 신품사현의 하나로 꼽히는 김생의 글씨로 전해지는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다. 큰 글씨임에도 꽉 차 보이고 활달한 기운이 느껴진다. 두 번째 현판은 영산전이다. 세조어필이라 현판 한쪽에 쓰여 있어 재위 중 온양이나 속리산으로 거둥할 때 마곡사에 들러 쓴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표암 강세황의 대광보전 현판이다. 강세황은 시서화 모두에 능한 예원의 총수로 신위김홍도의 스승이었다.

이외에도 심검당은 정조 때 청백리였던 조윤형의 글씨이고, 요사에 붙은 마곡사 현판은 근대의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이 그림을 곁들여 쓴 글씨다.

문화재 지정[편집]

[1]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으나,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영산전(보물 제800호), 사천왕문, 해탈문 등이 있을 뿐이다.[1]


마곡사는 충남에서 훌륭한 절집들을 한꺼번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으로 대한민국 사찰의 28본산 가운데 하나이며 충남의 모든 사찰을 관할하는 큰 절이다. 예로부터 춘마곡이라 하여 주위의 봄 경관이 빼어나며 계곡이 깊어서 《택리지》, 《정감록》 등의 지리지나 비기에서도 병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이 일대를 꼽고 있다. 오늘날 마곡사에는 오층석탑(보물 제799호) · 영산정(보물 제800호) · 대웅보전(보물 제799호) ·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 해탈문 · 천왕문 · 명부전 · 응진전 · 심검당 · 국사당 · 매화당 · 흥성루 · 수선사 · 대향각 · 영각 · 고방 등 건물과 탱화 · 전적 · 판본들이 있다.


마곡사 대웅보전[편집]

마곡사 대웅보전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公州 麻谷寺 大雄寶殿)은 마곡사에 있는 보물 제801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17세기(조선 중기)에 건립된 마곡사의 법당이다.[3] 하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 상층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3] 1.5m 높이의 기단 위에 세운 중층(重層) 다포계(多包系)의 팔작건물로서 다른 건축양식에 비해 구조가 특이한 점이 특징이다.[3] 외부는 일부가 변형되었으나, 내부는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3]

마곡사 대광보전[편집]

대광보전

마곡사 대광보전(麻谷寺大光寶殿)은 보물 제802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목조건물이다.[4]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된 다포계 양식의 단층 팔작지붕의 건물이다.[4] 자연석 더미 기단 위에 세웠으며, 기둥에는 뚜렷한 배흘림이 보이고, 개구부는 앞면 5칸과 측면 앞칸에만 두었다.[4] 1787년에 만들어졌으며, 세조김시습을 만나기 위해 타고 온 어가가 보관되어 있다.[4] 예전부터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세조가 매월당 김시습을 만나러 마곡사에 왔는데 김시습이 이미 떠나고 없자 ‘김시습이 나를 버리니 나도 가마를 타고 갈 수 없다’하면서 타고 왔던 연을 절에 두고 소를 타고 돌아갔다고 한다. 대광보전 마루에는 나무껍질로 만든 30평 정도의 돗자리가 있는데, 이 자리에도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조선 후기에 앉은뱅이가 마곡사에 찾아와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드렸다. 백일기도를 하는 틈틈이 이 돗자리를 짰는데 백일 뒤 기도를 마치고 나갈 때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법당문을 걸어 나갔다고 한다.

마곡사 오층석탑[편집]

마곡사 오층석탑

마곡사 오층석탑(麻谷寺五層石塔)은 보물 제799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마곡사 대광보전 앞에 있는 고려 후기석탑이며, 높이는 8.7m이다.[5] 중층(重層) 4각형으로 되어 있다.[5] 2층 기단 위의 5층 탑신부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식하고 옥개석모서리의 전각에는 풍경을 장식해 놓은 듯하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5] 상륜부라마탑 형식의 청동도금제로 되어 있으며, 한국에서는 유일한 것이다.[5] 고려 시대 석탑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다보탑이라고도 한다.[5]

기타[편집]

공주 10경[편집]

공주문화원, 공주예총, 향토사학자, 언론인, 사진작가 등으로 구성된 공주 10경 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한 공주 10경 후보지 15개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종 선정된 공주 10경에 마곡사가 선정되었다.[6]

사진[편집]


체험 및 시설[편집]

템플스테이[편집]

마곡사에서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마곡사 템플스테이
마곡사 템플스테이
마곡사 템플스테이



외부 링크[편집]

각주[편집]

  1. 사회 I·문화재 > 문 화 재 > 중요 문화재 > 충청남도 > 마곡사,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백범 김구, 백범일지, 도진순 주해, 돌베개, 1997, 412쪽
  3. 사회 I·문화재 > 문 화 재 > 중요 문화재 > 충청남도 > 마곡사 대웅보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4. 사회 I·문화재 > 문 화 재 > 중요 문화재 > 충청남도 > 마곡사 대광보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5. 사회 I·문화재 > 문 화 재 > 중요 문화재 > 충청남도 > 마곡사 오층석탑,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6. '공주 10景' 탄생!”. 뉴스타운. 2012년 7월 2일. 2014년 10월 18일에 확인함. 

교통[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