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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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김씨(蔚山 金氏)
관향울산광역시
시조김덕지
중시조김환
집성촌전라남도 장성군
전라북도 고창군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강동면 정자리
함경남도 문천군
주요 인물김계흥, 김황, 김온, 김인후, 김경수, 김남중, 김기하, 김시서, 김희서, 김녹휴, 김익중, 김경중, 김성수, 김병로, 김연수, 김상협, 김녹영, 김종인
인구(2000년)36,225명 (163위)
비고신라의 왕족 성씨

울산 김씨(蔚山 金氏)는 울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김덕지는 신라 경순왕의 제2 왕자로 학성 일대를 식읍으로 받고 학성부원군에 봉작되어 울산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학성은 울산의 별호이다.

역사[편집]

14세 김환이 고려조에 출사하여 충숙왕때 삼중대광 광록대부 영도첨의사에 이르고 문숙의 시호를 하사 받고 학성군에 봉해졌다. 따라서 후손들이 김환을 중시조로 삼고 학성의 개칭인 울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울산 김씨 ‘기사보’ 범례에서는 고려 삼중대광 광록대부 김환의 증손인 조선 개국원종공신 흥려군 김온까지의 분파를 정확히 알 수가 없어 김온의 후손들만 합보 한다고 적혀있다.

17세 조선 개국공신 흥려군 김온이 양주 목사 재임 중 태종의 왕권강화 정쟁에 휘말려 1413년(태종 13) 피화를 입자, 배위 정부인 여흥 민씨가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솔가하여 전라도 장성현 대맥동으로 낙담하면서부터 장성을 새 본거지로 삼아 가문이 융성하였다.

가문의 대세는 산림에서 명리를 멀리하고 오로지 학문과 존심양성에 주력하였다. 그러면서도 나라가 어려운 고비마다 분기하여 의를 지키며 충절을 다하였으니, 단종 참변의 계유정난 · 임진왜란 · 병자호란 · 한말 국난에 의인 열사가 무리지어 나왔다. 그러는 중에도 경세에 뜻하여 문·무과 급제자 및 음사 · 은일로 출사한 인사도 다수 나왔다.

특이할 일은 장성에 터를 잡은 지 5대에 문정공 하서 김인후이 나왔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호남 지방에서는 하서 김인후의 울산 김씨 집안을 명족인 으로 꼽으며,「울김」이라 부른다.

본관[편집]

본관은 울산광역시이다.

인물[편집]

고려[편집]

  • 김환(金環) : 고려조에 출사, 삼중대광 광록대부 학성군에 봉군되고, 영도첨의사에 오르고 문숙의 시호를 하사 받았고, 충숙왕 때 전택을 특사 받아 종묘에 배향되었다. 남양 홍씨 족보에 배위 남양 홍씨는 문하시중 홍승찬의 딸이라 한다.
  • 김계흥 :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지냈다. 다른 기록에는 자헌대부에 오르고 학성군에 봉군되었다.
  • 김황 : 봉상대부 전공총랑을 지냄. 배위 경주 김씨는 계림부원군 강의공 김득겸의 딸이다.

조선[편집]

  • 김온(金穩) : 자 이정, 호 학천, 흥려군, 회군공신·개국원종공신, 1380년(우왕 6) 생원시 합격, 1387년(고려 우왕 13) 문과 급제, 종부시 주부(主簿)로 출사, 그 해 여름 이성계(李成桂)를 따라 위화도에서 급료관을 맡았다. 이조좌랑, 단양군사, 1392년(태조 1) 함안군사, 1395년(태조 4) 회군 개국원종공신에 책록 되고, 1398년(태조 7) 밀양부사를 지냈다.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 진압 후 좌명원종공신 가선대부에 오르고 여산군에 봉군되었다.[1] 국조방목에는 흥려군으로 기록되어 있음. 1413년(태종 13) 양주목사때 태종이 왕권강화 일환으로 외척 세력을 제거하는 정치 파동을 일으킬 때 처가인 민무구 형제 옥사에 연루되어 화를 당하니 66세이다. 개국원종공신으로서의 지위는 그대로 인정돼 불천위가 내려졌으며, 부조묘는 장성군 북하면 중평리에 세워졌다가 1961년 장성군 북이면 신평리로 이건 되었다.[2] 전남 장성군 진원면 학림사에 배향 되었다. 묘는 실전되어 배위 여흥 민씨 묘 옆에 신위단비를 세웠다.
  • 정부인 민씨 : 아호 하소부인이다. 아버지는 여흥 민씨 한성판윤 민량이며, 조선 태종의 왕비인 원경왕후 민씨의 사촌언니이다. 무학대사로부터 전수받은 풍수이론을 정립하여 '하소결'을 저술하였으며, 조선 여류 3현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태종의 왕권강화 일환으로 외척 세력을 제거하는 정치파동을 일으킬 때 부군 흥려군 김온이 친정 여흥 민씨 집안 민무구 형제 옥사에 연루되어 1413년 화를 당하자, 이듬해 세 아들을 비롯한 전 가족을 데리고 호남 땅 장성 대맥동으로 남하하여 자리를 잡아 살게 되면서부터 자손들이 장성고을 사람이 되었다.[3] 전남 장성군 북이면 달성리 산37번지 복부혈에 유적지와 '명정재' 재실이 있다.

대한민국[편집]

  • 김성수 : 고려대학교경성방직, 동아일보 창설자이자 제2대 대한민국 부통령 인촌
  • 김병로 : 일제강점기 인권변호사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 김연수 : 삼양사 그룹 창설자 수당  ·
  • 김연홍
  •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 일민
  • 김상만
  • 김상협 : 화정 , 전 고려대 총장, 국무총리 남재
  • 김종인 : 전 청와대 경제수석
  • 김상홍(金相鴻. 1923-2010) : 보성전문학교 상과 졸업,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 수료. 실업가, 전 삼양그룹 회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주)경방 이사, 철탑산업훈장, 금탑산업훈장, 한국의 최고경영자상 등 수상했다.
  • 김태규(金兌奎, 1923-2017) : 대한민국의 법학자, 전남대 법대 교수, 제9대 국회의원이다.
  • 김녹영(金祿永. 1924-1985) : 대한민국 제8・9・10・12회 국회의원, 제12대 국회부의장. 야당인 신민당 의원으로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반독재 투쟁에 힘씀, 80년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투옥되는 고초를 겪음, 김상현 전 의원과 민추협을 꾸려 대항, 1985년 지병으로 타계한 후 건국훈장 추서이다.[4]
  • 김병관(1934-2008) : 대한민국의 언론인, 기업인이다.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이자 언론인 김성수(金性洙)의 장손, 동아일보사의 대표이사 회장, 사회분야 발전에 진력하고 민족 전통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여받았다.
  • 김병철(金炳哲. 1949- ) : 서울대학교 축산학과 졸업, 괴팅겐대학교 대학원 식육가공학 박사, 전 고려대학교 총장이다.
  • 김재식(金載軾. 1959- ) : 성균관대학교 섬유공학과 졸업, 전 효성그룹 중국 가흥 법인장, 前 중국 가흥 한인회장이다.
  • 김재진(金載軫. 1961- )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교수(2008년-현재), 강남세브란스병원 부원장(2016년-현재)이다.
  • 김재호(金載昊. 1964- ) : 동아일보채널 A 대표이사이다.
  • 김재열(金載烈. 1968- ) :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이건희 회장의 둘째사위이다.

과거 급제자[편집]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2명, 무과 급제자 4명, 음관 13명, 사마시 급제자 45명을 배출했다.[5][6]

문과[편집]

김응두, 김인후, 김백균, 김대명, 김종진, 김우휴, 김진호, 김동주, 김흥수, 김상호, 김헌수, 김상희

무과[편집]

김해룡, 김흥국, 김경택, 김형택

음관[편집]

김기하, 김시서, 김장환, 김경휴, 김도환, 김우휴, 김영수, 김경휴, 김칠환, 김도환, 김봉휴, 김종휴, 김정환

생원시[편집]

김준, 김응두, 김규, 김대명, 김진추, 김극진, 김의휴, 김시화, 김기휴, 김방유, 김응휴, 김경휴, 김기환, 김요언, 김연환, 김요익, 김흥환, 김봉수, 김영환

진사시[편집]

김국노, 김인후, 김백균, 김홍균, 김석형, 김진휘, 김시서, 김곡, 김경집, 김익휴, 김문재, 김이조, 김방묵, 김방규, 김도환, 김종휴, 김만현, 김봉휴, 김상환, 김학수, 김기중, 김용중, 김헌수, 김학규, 김건중(金建中), 김용기

항렬자[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