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18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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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 김연수
秀堂 金延壽
조선인민공화국 총리 경제특보비서관
임기 1945년 11월 6일 ~ 1946년 2월 17일
부주석 여운형
총리 허헌
부총리 최근우
前 대한민국 부통령 경제특보비서관
임기 1951년 12월 17일 ~ 1952년 3월 27일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김성수
총리 장면
신상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출생일 1896년 8월 25일
출생지 조선 전라도 고창군 부안면 인촌리
사망일 1979년 12월 4일 (83세)
사망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병사
거주지 대한제국의 기 대한제국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대한제국의 기 대한제국 전라남도 장성
일본 제국 일본 제국 오사카
일본 제국 일본 제국 교토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경성부
만주국 만주국 펑톈 성 펑톈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학력 일본 교토 제국대학교 상학과 학사
경력 언론인 겸 기업가
삼양사 명예회장
민주국민당 경제특보위원
민주당 경제특보위원
정당 무소속
부모 김경중(부)
장흥 고씨 부인(모)
배우자 박하진
자녀 김상협(차남)
친인척 조부 김요협
백부 김기중
김성수
사촌 형제 김재수
종교 유교(성리학) → 개신교(장로회)

김연수(金秊洙, 1896년 8월 25일 ~ 1979년 12월 4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김성수의 동생으로 아호는 수당(秀堂), 본관은 울산이다. 삼양사의 설립인이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부안 줄포리 생가 전경(1900년대 초 김성수, 김연수 형제의 생가)

전라북도 고부군에서 대지주인 김경중과 장흥 고씨 부인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친형 김성수(金性洙)는 4살 때,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 김기중의 양자로 들어갔으므로 그가 사실상 장남 역할을 했다.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였던 하서 김인후의 13대 후손으로, 선조들은 전라남도 장성에 대대로 살았으며 증조부 김명환(金明煥)의 셋째 아들인 김요협이 처가가 있는 전라북도 고부군으로 이주해오면서 고부군에서 살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활동[편집]

일본 유학시절의 김연수(오른쪽 선 이)와 김성수(왼쪽 앉은 이). 큰아버지 김기중의 양자로 간 김성수는 법적으로는 사촌 형이었다.

그는 일본에 유학하여 1921년 교토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뒤, 형인 김성수가 경영하던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간부로 근무했다. 1925년 경부터는 학교 경영 및 언론사 운영 등으로 사회 활동에 나선 김성수를 대신하여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경영을 주도하였다.

1939년 경성부 주재 만주국 명예총영사, 1940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직을 받았다. 특히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는 거액의 국방헌금을 기부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경성방직을 기반으로 군수 산업에 뛰어들었고, 1944년 전쟁 지원을 위한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1920년초의 줄포 농장

해방 이후[편집]

1945년 광복 직후 친일파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1949년 반민특위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일제의 폭거에 맞서 민족자본을 형성했다는 견해도 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풀려났다. 김연수는 검찰 앞에서 자신의 죄과를 순순히 시인하고 속죄하였다 한다.[1] 재판에 회부된 김연수는 공판이 끝나자 그날로 석방되었고, 반민특위 재판부는 그에 대해 재산 일부의 압수와 공민권 일시 정지라는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1] 김연수 일대기인'한국 근대기업의 선구자'를 통해 중추원 참의 임명과 관련해 1940년 5월 조간신문에 자신이 칙임참의에 임명됐다는 기사를 보고 내무국장 우에다키에게 항의하러 갔지만 결국 그의 완력에 굴복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설사 내가 지녔던 일제치하의 모든 공직이나 명예직이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고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과 민족앞에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통렬한 자기반성의 글을 실었다.

이후 1961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경제협의회 회장을 맡고 여러 차례 훈장을 서훈 받는 등 재계의 원로로 활동했다.

사후[편집]

그가 1924년 ‘삼수사(三水社)'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삼양그룹은 3남인 김상홍(삼양그룹 명예회장)과 5남 김상하의 공동 경영 체제를 거쳐 손자 김윤(김상홍의 아들)이 회장을 맡아 사촌들과 함께 경영하고 있다. 7남 6녀를 둔 김연수의 2남은 전 국무총리 김상협이다.

가족 관계[편집]

관계 이름 출생일 사망일 활동사항
할아버지 김요협 (金堯莢) 1833년 1909년
할머니 연일정씨(延日鄭氏) 1831년 1911년
아버지 김경중(金暻中) 1863년 1945년 4월 27일
어머니 장흥고씨(長興高氏)
형님 김성수(金性洙) 1891년 10월 11일 1955년 2월 18일 2대 부통령
형수 고광석(高光錫) 1886년 1919년
형수 이아주(李娥珠) 1899년 8월 24일 1968년 9월 11일
부인 박하진(朴河珍)
장남 김상준(金相駿) 1918년 6월 4일 2004년 9월 10일 삼양염업 명예회장
차남 김상협(金相浹) 1920년 4월 20일 1995년 2월 21일 국무총리
삼남 김상홍(金相鴻) 1923년 12월 17일 2010년 5월 23일 삼양사 명예회장
손녀 김유주(金有珠) 1950년 10월 2일 -
손자 김윤(金鈗) 1953년 2월 24일 - 삼양홀딩스 대표이사 회장
손자 김량(金亮) 1955년 6월 1일 - 삼양홀딩스 부회장
손녀 김영주(金令珠) 1958년 10월 16일 -
사남 김상돈(金相敦) 1925년 2월 24일 -
오남 김상하(金相廈) 1926년 4월 27일 - 삼양사 대표이사회장
육남 김상철(金相喆) 1938년 4월 25일 2007년
칠남 김상응(金相應) 1946년 3월 29일 2002년 前삼양사 대표이사회장

함께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역사문제연구소, 《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역비의책 15》 (역사비평사, 2003) 262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