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정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기정진(奇正鎭, 1798년~1879년)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행주, 초명은 금사(金賜),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전라북도 순창에서 출생은 했지만, 생활은 아버지 유언에 따라 선대 고향인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 소곡리(小谷里) 하남(河南)·탁곡(卓谷) 일대에서 생활 하였다.[1]

저서[편집]

  • 《납량사의(納凉私義)》
  • 《노사문집》
  • 《답문유편(答問類編)》

관련 문화재[편집]

조선 고종 때의 학자이자, 성리학의 6대가 가운데 한 사람인 노사 기정진(1798∼1876)의 문집과 그의 저서『답문류편』을 고종 39년(1902)에 목판에 새긴 것으로, 문집은 653매,『답문류편』은 209매이다.

목판에 새긴 연대는 늦으나 빠진 목판이 없을 뿐 아니라 간행처인 신안사가 조선 후기 경상도 일원의 출판기능을 담당했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간행된 책자가 전하는 것이 없으므로 그 사료사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99년 7월 5일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214호로 지정되었다.

각주[편집]

  1.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1]]